죽음에 이르는 병, ‘상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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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이르는 병, ‘상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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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과 비장에 울체(鬱滯)되어 있는 기운 풀어주어야

“탈대로 다 타시오~ 타다 말진 부지 마오. 타고 다시 타서 재 될 것은 하거니와, 타다가 남은 동강은 쓰일 곳이 없소이다......”

라디오에서 이 가곡이 흘러나올 때면 문득 기억나는 사람이 있었다. 부스스한 머리칼에 꺼칠한 얼굴, 초점 없는 눈망울로 날 찾아와 가슴 아프게 했던 여인.

내가 당시 대학원 재학중이라 한의원을 자주 비워서, 그녀는 대 여섯 번 만에야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눈물을 글썽이며 털어놓던 이야기......

“3개월 전부터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고, 잠도 잘 수가 없어요. 이러다 정말 죽을 것 같아요!”

그녀의 손목을 잡아보니 맥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기력이 떨어져 있었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이 지쳐 있는 상태였다.

그녀의 병은 ‘상사병’.
어느 날 문화센타에서 처음 본 한 남자. 도예를 가르치는 그의 예술가적인 분위기에 그녀는 이성을 잃고 말았다.

그녀는 태어나서 그 때까지 한 번도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 없었다. 지금의 남편과 10년 전 중매로 만나 결혼할 때도 그냥 ‘남들 다 하는 결혼이니까’하는 마음이었단다.

한데 난생 처음으로 그 남자에게서 이성적인 호감과 설렘을 느낀 그녀. 뒤늦게 타오르는 장작불 같은 사랑에 스스로를 불태우고 있었던 것이다. 불 속으로 들어가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내 불 속으로 뛰어들고 마는 불나방처럼.

그 남자 역시 가정이 있는 몸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녀는 더더욱 속만 끓이던 터. 자신의 감정을 그에게 솔직하게 표현하자니 두 사람 사이에 가로막힌 현실이 너무 비정하고, 그냥 참고 있자니 날이면 날마다 가슴 속에서 불이 이는 것이었다. 음식도 입에 안 들어가고 배도 안 고프고 비쩍비쩍 말라가다가 나를 찾아온 그녀. 과연 내가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상사병(想思病)은 말 그대로 생각을 많이 하여 생기는 병이다. 요즘 사람들은 ‘사랑해’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하지만, 원래 ‘사랑하다’는 말은 ‘생각하다’는 의미였다. 누군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 그것이 쌓여 그리움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겉으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 상대방이 받아주지 않는 사랑을 할 때 우리는 흔히 ‘상사병’ 걸렸다고 한다. 병명 자체가 무슨 우스개같지만, 실은 중대한 병이다.

한의학에서는 사즉기결(思卽氣結)이라 하여, 생각이 지나치면 기가 뭉쳐서 순환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특히 생각이 지나치면 소화기능이 크게 저하되기 때문에, 생각이 많은 상태에서 음식을 먹으면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음식을 봐도 아예 식욕이 안 생기는 경우가 더 많다. 맞선을 볼 때나 소개팅을 할 때, 좋아하는 남자가 앞에 있으면 맛있는 음식을 봐도 식욕이 일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상사병에 걸리면 모든 감정과 감각을 한 사람에게만 집착하게 되어 일상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녀처럼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것은 물론, 눈빛은 항상 허공을 맴돌고, 걸음걸이도 발을 헛 딛는 것처럼 정신이 나간 모양이 된다. 그대로 방치하면 정신이상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이렇게 먹지도 못하고 생각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 가슴 속에서는 그야말로 뜨거운 불길이 타올라 머리 위로 솟구친다. 거기다 영양실조로 전신적인 허약 증상까지 겹치면 바로 ‘미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상사병에 가장 좋은 치료법은 가슴에 맺힌 기를 풀어주는 것. ‘상사(想思)’의 대상을 직접 만나게 해주는 게 가장 좋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한의학적인 치료를 우선해야 한다. 심장과 비장에 울체(鬱滯)되어 있는 기운을 풀어주어야만 비로소 식욕이 돋고 소화기능이 제대로 돌아온다.

그리고 나서 병행되어야 할 것이 정신적인 치료.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속 시원히 털어놓아야만 한다. 옛날에 ‘임근님 귀는 당나귀 귀’ 했다가 돌아가신 분의 설화도 있는 것처럼, 사람이 가슴에 맺힌 말을 하지 못하면 병이 되고 만다.

그 사람을 만나 ‘사랑한다’말을 하지 못해 병이 되었다면, 주변의 친한 친구나 병원의 의사라도 찾아가 하소연해야 한다. 이 때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진정으로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해줄 때, 비로소 환자는 마음의 위안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가슴을 여는 대화를 하다 보면 이미 병이 반쯤은 치료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 이후에 필요한 것은 자신의 적극적인 노력. 한 가지 생각에 집착하기 힘들 정도로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한다. 정신을 ‘정신 없이’ 만들어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이다. 가끔씩은 모든 것을 잊고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보는 것도 치료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가슴에 맺힌 화기(火氣)가 위로 치받을 때마다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려울 정도로 괴로워하던 그녀. 내장 기관에는 별 이상이 없었으나 마음의 병이 단단히 들어있던 그녀에게 비장과 심장의 기운을 보강해주면서 화기를 다스리는 약을 처방해주었다. 물론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말로 그녀를 다독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용기를 가지고 그 분을 만나보세요. 그러면 뭔가 해결 방법이 있겠죠.”

그녀가 내게 듣고 싶었던 말은 이런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난 그 때나 지금이나 조금은 ‘연애’에 대해서는 항상 ‘책임’을 먼저 내세우는 편이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그저 ‘시간이 지나면 다 좋아질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하긴, 내가 만약 ‘밀고 나가라’고 얘기했다면 오히려 그녀가 ‘그래도 참고 잊어야겠지요’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나도 참 그 땐 고지식한 의사였던 것 같다.

한자로 ‘사랑 애(愛)’자는 ‘받을 수(受)’ 자에 ‘마음 심(心)’ 자를 합친 말이다. 마음을 주고 받는 일이 바로 사랑이라는 의미다. 그 마음이 일방적으로 가기만 하고 되돌아오지 못할 때 바로 병이 된다.

황진이를 기녀의 길로 가게 만든 것도 처녀시절 이웃집 총각의 ‘상사병’으로 알려져 있다. 황진이를 보고 반한 총각이 혼자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고, 그 소식을 전해들은 황진이가 세상사 다 부질없음을 느끼고 자발적으로 기녀가 된 것이다. 조선 시대에도 이렇게 상사병은 죽음에 이르는 몹쓸 병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신화에 의하면 큐피드의 화살을 맞은 사람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사랑을 갈구하다가, 그 사랑을 얻지 못하면 목숨까지도 버렸다고 한다. 도대체 사랑이 뭐길래 이렇게 사람을 병들게 하는 것일까?
사랑에 관한 노래만 나오면 떠오르는 그녀의 수척한 얼굴. 지금 다시 만나면 그녀 가슴 속 깊은 곳에 응어리진 사연을 좀 더 적극적인 마음으로 다독여줄텐데.

오늘도 대한민국 하늘 아래 또 누가 가슴앓이를 하며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밤을 새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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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병 2006-03-31 20:03:00
첫 눈에 반하면 상사병 걸린다.

불치병 2006-04-01 10:11:02
누가 그러네 상사병 한 번 걸려보았슴 소원이 없게다고...

하사병 2006-04-01 22:30:25
정말 상사병이 그러네요..저도 얼마전에 겪었는데, 그래서 식욕이 떨어지는 거군요

소년 2006-04-04 05:29:02
어메 상사병 걸리면 죽습니까?
조심해야 겠다.


한자 2006-04-10 16:08:28
상사병의 한자는 相思입니다. 想이 아니라 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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