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금성산성은 내가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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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군무예' 전수자 청산스님 일가

▲ 금성산성지기 청산스님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무더운 날씨가 잠시나마 수그러진 지난 11일 토요일 오후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 금성리에 위치한 고려시대 산성인 금성산성을 찾았다.

▲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 금성리에 위치한 고려시대 산성인 금성산성의 전경

이날은 전라남도 문화정책과에서 실시중인 '남도호국산성 순례' 길을 나선 일행들과 동행을 했다.

▲ 금성산성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금성산성의 유래와 승군무예의 전승에 대한 필요성들을 관광해설사의 입장에서 설명을 하고 있는 청산스님.

금성산성은 호남을 지켜낸 3대 산성 중에 한곳으로 약 2KM정도 가벼운 산행이 끝날때 쯤이면 금성산성 입구에 있는 보국문을 지나 충용문을 나서면 산성의 멋진 풍광과 바람을 안으며 아담하지만 불상을 모시고 수련장에 각종 병기가 놓여 있는 '동자암'이 자리를 잡고 있다. 

▲ 앝으마한 분지위에 우위치한 동자암의 모습이 정겹다.

그간 각종 방송과 언론에 소개되어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금성산성지기 청산스님 일가족을 만나보기로 했다.

'동자암'에서 기거 중인 청산스님(50)일가는 보리스님(44)과 세자녀 황룡(18),청룡(17), 구봉(12) 스님을 포함 총 5명의 식구가 고구려 시대의 '호군승군무예'를 연마하며 산성을 지키고 가꾸며 기거 중에 있다.

▲ 금성산성은 우리가 지킨다. 청룡, 청산, 황룡스님 가족이 승군무예를 지키며 전승을 위해 여념이 없다.

청산스님이 전승 보존하고 있는 '호군승군무예'는 예부터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승무, 승덕의 정신을 이어 받아 국가의 위기때마다 지켜온 호국정신과 진취적인 민족성을 승려들에게 불살생의 계를 어기면서까지 나라와 민족이 어려움속에 처했을 때 승군들이 호국충정의 정신을 발휘하며 호국충정을 위해 무술연마를 했던 무예가 '승군무예'이다.

이 승군무예는 임진왜란 때 왜구들을 공포에 떨게 하며 조선을 구해냈던 서산대사 무예의 맥을 잇고 있는 청산스님 일가는 불철주야 무공수련에 정진 중에 있다.

청산스님은 서산대사의 4대 문중파의 소요태능줄기의(영담대종사)17대 제자로서 정통무예와 검도, 유도, 쿵푸, 불교무술의 고수로 인정 받으면서 승군무예의 맥을 이고 있으며 현재 복원 중에 있다.

청산스님 일가족은 이곳 금성산성을 지키며 산성내 유지를 위해 이곳에 기거한지 벌써 8년이 지났다. 특히나 금성면 대곡리 산이천 마을 출신인 청산스님은 이 지역내 인물로서 담양과 금성산성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묻어 나오는 남다른 생활상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금성산성 알림이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청산스님 일가는 이곳을 방문하여 이들의 무술 시연 모습을 보려고 몰려드는 관광객들에게 하루 두 세 번 시연을 하고 있다. 시연은 비장한 음악에 맞춰 검과 창, 봉 등 각종 무기들을 휘두르며 대나무 베기등 실전을 방불케 하는 무예 시연을 보고 있노라면 왜구들이 공포에 떨어야 했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 청산스님이 '승군무예' 시연중에 대나무 베기를 선보이고 있다.

스님일가의 하루 생활을 묻자 "새벽 3시에 기상을 하여 새벽 예불을 마치고 심신수련과 산성 주변을 청소하기 위해 성곽을 한바퀴 돌며 점검하는 것으로 하루일과가 시작된다"고 한다.

또한 성곽주변을 돌며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각종 쓰레기와 흐트러진 성곽돌을 주워 성곽 보수까지 하고 있다.

주말을 맞아 많은 관광객이 몰려올 때면 관광객들을 상대로 나라가 환란에 빠졌을 때 호국의 정신으로 금성산성을 지켜낸 중요성을 설명하는 해설사 역할도 하고 있다.

▲ 청산스님의 자녀 황룡과 청룡 스님의 무술 시연 모습.

기다랗게 기른 수염과 내공의 깊이가 느껴지며 범상치 않은 외모에 독특하게 가족모두가 무예를 전승하는 모습이 많은 언론에 노출된 것에 대해 묻는 본 기자에게 청산스님은 "원래는 동자암에서 기거를 할 때는 철저한 은둔속에서 무예를 연마하고 수련 전승 하려는 게 목적이며 뜻이었다", "한데 이곳 금성산성을 찾는 등산객들이 언론에 제보하면서 차차 은둔에서 벗어나 공개적으로 나서게 됐다"며 설명한다.

▲ 동자암 청산스님이 충용문 앞에서 관광개들에게 승군들이 호국충정의 정신을 발휘하며 호국충정을 위해 무술연마를 했던 무예가 '승군무예'와 호국정신, 금성산성의 유래에 대해 설명을 히고 있다.

이어 "승군무예를 복원하는 과정속에서 단군시대때 부터 전해 내려온 우리 전통의 무예를 전승하고 알리는 것이 첫째 목적이고, 담양군이 여러모로 부족한 여건 속에서 저희가 나섬으로 담양이 다시 활력을 찾기 바라는 마음에서 일가족의 생활상을 공개 했다"고 한다.

스님은 "이곳에서 앞으로도 보리스님과 세명의 자녀들과 동자암에서 부처님의 법도를 배우고 무술을 연마하며 인간사 번뇌를 끊을 해탈의 경지를 찾으며 금성산성을 지키며 살겠다"고 밝힌다.

동학혁명때 이곳의 모든 자료가 소실 되었지만 역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이곳을 찾는 모든이에게 산성일지를 꼭 작성 해달고 부탁을 한다.

이어 보리스님은 "매년 신년이면 이곳에서 새해를 맞이하여 찾아오는 모든이에게 떡국을 공양(보시)하고 있다"며 말한다.

▲ 보리스님이 동자암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국궁에 대해 설명을 하고 활 시위를 당기는 방법을 일일히 알려 주고 있다.

외부와의 유일한 접촉 수단을 지니고 있는 보리 스님은 "동자암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태양열 발전기를 이용해 사용하고 있다", "속세를 벗어나 일가족에게 현대의 통신장비가 필요치 않지만 안 살림과 찾아오시는 분들을 위해 휴대폰을 이용해 SNS 등을 통해 외부와 교류를 하고 있으며, 일가족을 소개하는 '동자암' 이라는 카폐도 운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 아담하고 소박한 숲길을 지나 동자암으로 가는 길.

이번 남도호국산성순례에 나선 김영준(수완중,14)군은 "처음으로 산성순례에 가족이 모두 참가했는데  나라가 어려울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많은 스님들이 일어나 적을 물리치고 또 그 무예를 전승하고 연마하는 스님일가족을 보니 내가 가진 조국사랑의 마음을 더 새롭게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한편, 금성산성(사적 제353호)은 고려시대의 산성으로 내성은 700m, 외성 2,000m로서 현재 동.남. 북문지 등의 시설이 남아 있다.

북쪽으로 연결된 북문은 순창 강천사 계곡까지 이르고 산성의 형태가 천혜의 절벽과 자연 산세를 이용한 포곡식(包谷式) 성으로서 입구에 남문지를 두고, 주봉인 철마봉이 강천사로 뻗은 등고선을 따라 순창과의 경계선에서 그쳤는데 여기에 북문이 있다.

또, 내성 안으로는 1개 마을을 형성할만한 넓은 평야지대가 있는데, 1688년(숙종 14) 당시만 해도 성내 주민호수가 136호이며 담양·순창·창평·옥과·동복 등지에서 거두어들인 군량미가 1만2000석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는 치열한 싸움터가 되어 성안의 모든 시설이 불에 탔다. 현재는 그 내부의 시설이 모두 소실되어 있다.

이기섭 (전남도 관광정책과장)은 “전남지역에는 많은 호국산성이 있는데 이런 호국산성 순례 프로그램을 통해 역사의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전남도는 지난 7월 우리나라에 태권도를 배우기 위해 방문한 해외 젊은이들 200여명을 대상으로 장보고 유적지와 삼별초의 항거지인 남도산성 순례행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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