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타운/김병철 기자] 생리용품을 공공시설에서 무료로 제공한다는 정책을 두고 누군가는 작은 복지사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동지급기 한 대를 설치하고 그 안에 생리대를 채워 넣는 일이 도시의 미래를 바꾸는 거대한 사업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책의 가치는 예산 규모나 시설의 크기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시민이 가장 곤란한 순간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행정이 일상 속 불편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살피는지가 도시의 품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수원특례시가 시범 운영하는 ‘모두의 생리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득이 얼마인지, 몇 살인지, 수원에 거주하는지를 묻지 않는다. 신청서를 작성하거나 신분증을 내보일 필요도 없다. 생리용품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공공시설에 설치된 지급기에서 중형 생리대 2개가 들어 있는 소포장 제품을 받을 수 있다.
그동안 공공 영역의 생리용품 지원은 주로 저소득층이나 취약계층 청소년을 중심으로 추진됐다. 필요한 대상에게 비용을 집중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지만, 지원 기준 밖에 있는 시민이 갑자기 생리용품을 필요로 할 때 이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지원 대상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절차가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었다.
‘모두의 생리대’는 지원 대상을 특정 계층으로 한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 방식과 차이가 있다. 생리용품을 선택적 복지 물품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필요한 생활필수품이자 공공위생 물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공공시설 화장실에 휴지가 비치돼 있는 이유는 이용자의 소득이나 나이를 확인한 뒤 지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손을 씻을 수 있도록 비누와 물을 제공하는 것 역시 특정 계층에 대한 시혜가 아니다.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이 최소한의 위생과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공공이 기본적인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생리대도 같은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생리는 예고된 일정에 따라 언제나 정확하게 시작되는 일이 아니다. 예상보다 이르게 시작되거나 외출 도중 갑작스럽게 생리용품이 필요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여분을 준비하지 못한 학생이나 직장인, 행정기관을 방문한 시민, 여행 중인 관광객에게 생리대 한두 개는 단순한 편의용품이 아니다. 당장의 불안과 당혹감을 해소하고 일상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수원시는 시청과 4개 구청, 보건소, 가족여성회관, 여성문화공간-휴, 장애인종합복지관 등을 중심으로 지급기 운영을 시작했다. 행정기관뿐 아니라 여성·보건·복지시설을 우선 설치 장소로 정했다는 점은 사업의 취지와 맞닿아 있다.
앞으로는 수목원과 미술관, 박물관 등 문화·관광시설에도 지급기가 들어선다. ‘2026~2027 수원 방문의 해’를 맞아 시민뿐 아니라 수원을 방문하는 관광객도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 범위를 넓히겠다는 것이다. 거주지를 기준으로 이용자를 구분하지 않는 만큼 공공서비스의 문턱을 실질적으로 낮추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수원시는 8월 40대, 9월 10대를 추가로 설치해 9월 초까지 자동지급기를 총 60대로 확대할 계획이다. 기기 한 대에는 생리대 170팩을 보관할 수 있고, 기기별 재고와 이용량도 자동 집계된다. 전담 인력이 작동 상태와 재고를 점검하고 부족한 물량을 보충하는 관리체계도 마련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60대 설치’라는 숫자가 사업의 최종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설치 실적이 아니라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생리대다. 지급기가 눈앞에 있어도 제품이 비어 있거나 고장 난 상태라면 정책은 작동하지 않는다. 설치 장소가 눈에 띄지 않거나 안내가 부족해 시민이 존재를 알지 못한다면 이용 문턱은 여전히 남는다.
자동으로 집계되는 이용량은 단순한 재고관리 자료를 넘어 정책을 개선하는 근거로 활용해야 한다. 어느 시설의 이용량이 많은지, 어느 시간대에 제품 소진이 집중되는지, 지급기 위치에 따라 이용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석하면 추가 설치가 필요한 장소와 물량 보충 주기를 보다 정확하게 결정할 수 있다.
반대로 이용량이 적은 시설이 확인되면 그 원인도 살펴야 한다. 실제 수요가 적은 것인지, 지급기 위치를 찾기 어려운 것인지, 홍보가 충분하지 않았는지 구분해야 한다. 단순히 이용 실적이 낮다는 이유로 기기를 철거하거나 사업 필요성이 낮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장소에 설치한 뒤 시민이 이용하지 않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정책 설계의 책임을 이용자에게 돌리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지급기의 위치도 중요하다. 이용자가 주변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생리용품을 받는 장면이 불필요하게 노출되거나 특정 공간을 찾아가 직원에게 문의해야 한다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한다’는 취지가 약해질 수 있다. 화장실과 가까우면서도 안내가 명확하고, 장애인과 이동 약자도 접근하기 쉬운 곳을 선정해야 한다.
장애인종합복지관에 지급기를 설치한 만큼 장애 유형에 따른 이용 편의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휠체어 이용자가 손을 뻗을 수 있는 높이인지, 조작 방법이 복잡하지 않은지, 시각장애인을 위한 촉각·음성 안내가 필요한지는 현장에서 확인해야 할 문제다. 모두를 위한 정책은 이용자의 차이를 세심하게 반영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제품의 품질과 위생관리 역시 소홀히 할 수 없다. 수원시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중형 생리대를 2개입 소포장으로 제공한다고 밝혔다. 공공시설에 비치된 제품이라는 이유로 품질 기준이 낮아져서는 안 된다. 포장 훼손 여부와 보관 상태, 제품의 제조일자와 사용기한 등을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관리 기준도 필요하다.
한 번에 제공하는 수량이 2개라는 점은 긴급한 상황을 넘기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공공시설 체류 시간과 이용자의 상황은 서로 다르다. 제공 수량이 실제 필요를 충족하는지, 이용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불편은 없는지 시범사업 기간 시민 의견을 충분히 들어야 한다.
무분별한 이용이나 제품의 과다 반출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을 수 있다. 공공물품을 책임 있게 사용해야 한다는 원칙은 당연하다. 그러나 일부 오남용 가능성만을 앞세워 전체 이용자에게 복잡한 인증 절차를 요구한다면 보편적 접근이라는 사업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
과도한 통제보다는 지급 구조와 이용량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관리 방안을 마련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기기별 소진 속도를 살피고 특정 장소에서 비정상적인 이용이 반복될 경우 현장 상황을 확인하면 된다. 일부 가능성을 이유로 모든 시민을 잠재적인 오남용자로 바라보는 방식은 공공서비스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킬 수 있다.
사업 홍보도 지급기 설치만큼 중요하다. 시민이 ‘모두의 생리대’라는 정책을 알고 있어도 정확한 설치 장소를 모른다면 긴급한 순간 활용하기 어렵다. 수원시 홈페이지와 지도 서비스, 공공시설 안내판 등을 통해 지급기 위치와 운영시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시청이나 구청은 평일 업무시간을 중심으로 운영되지만 생리용품이 필요한 순간은 행정기관 운영시간에 맞춰 발생하지 않는다. 야간과 주말에도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얼마나 포함돼 있는지, 운영시간이 제한된 장소는 어디인지 명확하게 안내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도서관, 체육시설, 청소년시설, 공영주차장 주변 편의시설 등 시민의 생활 동선과 가까운 공간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학교와 청소년시설 주변의 접근성도 살펴야 한다. 청소년은 생리용품을 갑자기 필요로 해도 경제적 부담이나 심리적 위축 때문에 구매 또는 도움 요청을 망설일 수 있다. 교사나 시설 관계자에게 직접 요청하지 않고 스스로 이용할 수 있는 지급기가 있다면 불필요한 낙인과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문화·관광시설 설치는 수원시의 도시정책과도 연결된다. 관광객에게 좋은 도시는 볼거리가 많은 도시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동 과정에서 화장실을 편리하게 찾을 수 있고, 어린이와 노인, 장애인, 여성 등 다양한 방문자가 곤란한 상황에 놓였을 때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수목원과 미술관, 박물관에 설치되는 공공생리대는 관광객에게 수원의 생활행정 수준을 보여주는 작은 지표가 될 수 있다. 거창한 환대 구호보다 예상하지 못한 불편을 실제로 해결해 주는 서비스가 도시의 이미지를 더 분명하게 남긴다.
이재준 시장이 이끄는 수원특례시가 이번 사업을 여성 건강 정책의 한 축으로 자리 잡게 하려면 시범 운영 이후가 더 중요하다. 중앙정부 사업에 참여해 지급기를 설치하는 단계에서 멈추지 않고 수원만의 운영 기준과 평가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우선 시설별 설치 위치와 운영시간, 이용량, 재고 부족 횟수, 고장·민원 발생 건수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시민 만족도와 추가 설치 요구도 함께 분석해야 한다. 수치가 축적되면 어떤 시설에 지급기를 더 설치해야 하는지, 어떤 시설은 위치를 조정해야 하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사업 성과를 단순한 배부 수량으로만 평가해서도 안 된다. 생리대가 많이 제공됐다는 것은 시민의 수요가 컸다는 의미일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여성 건강권이 얼마나 개선됐는지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시민이 위급한 상황에서 실제 도움을 받았는지, 접근 과정에서 불편이나 낙인이 없었는지, 시설별 서비스 격차가 줄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시범사업이라는 이유로 단기간 실적에 매달리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초기에는 정책 인지도가 낮아 이용량이 적을 수 있다. 반대로 사업이 알려지면서 수요가 빠르게 증가할 수도 있다. 충분한 운영 기간을 두고 계절과 시설 이용객 변화까지 고려해야 정확한 평가가 가능하다.
예산의 지속 가능성도 준비해야 한다. 지급기 설치비뿐 아니라 생리대 구입비, 유지·보수비, 전담 인력 운영비가 계속 필요하다. 중앙정부의 시범 지원이 축소되거나 끝난 뒤에도 서비스를 유지할 것인지, 이용 수요에 따라 시비를 어느 정도 투입할 것인지 검토해야 한다.
사업을 안정적으로 이어가려면 의회와 시민사회, 복지·보건 현장의 의견도 폭넓게 들을 필요가 있다. 여성 건강과 위생 문제를 특정 부서만의 업무로 한정하지 말고 청소년, 장애인, 관광, 체육, 문화, 복지 정책과 연결해야 한다. 지급기가 설치되는 시설의 관리 주체가 서로 다른 만큼 부서 간 역할도 명확히 정리해야 한다.
‘모두의 생리대’라는 이름에는 필요한 순간 누구나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여기서 ‘모두’는 홍보문구가 아니라 행정이 지켜야 할 기준이다. 나이와 소득을 묻지 않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장애 여부, 거주지, 방문 목적, 이용 시간과 관계없이 필요한 사람이 실질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생리용품은 사치품도, 선택적으로 소비하는 편의품도 아니다. 생리하는 사람이 건강과 위생을 지키며 일상을 이어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품이다. 이를 개인이 전적으로 준비해야 할 문제로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공공시설이 최소한의 비상 수요를 책임지는 것은 충분히 설득력 있는 정책 방향이다.
수원시가 설치하는 자동지급기 60대는 그 자체로 완성된 성과가 아니다. 시민이 필요한 순간 쉽게 찾고, 망설이지 않고 이용하며, 언제 가더라도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비로소 정책의 의미가 생긴다.
작은 생리대 한 팩이 누군가에게는 수업을 계속 듣게 하고, 업무를 마칠 수 있게 하며, 여행 일정을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다. 행정은 바로 이런 일상의 순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대규모 개발사업과 첨단산업 육성도 중요하지만 시민의 불편을 구체적으로 해결하는 생활정책 역시 도시의 경쟁력이다.
수원특례시의 ‘모두의 생리대’가 일회성 시범사업을 넘어 지속 가능한 공공서비스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지급기 60대라는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정책의 관점이다. 필요한 시민에게 조건을 묻기 전에 도움을 제공하고, 누구도 생리 때문에 일상을 포기하거나 당황하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이다.
화장실에 휴지와 비누가 있는 것을 특별한 복지라고 부르지 않듯, 공공시설에서 비상용 생리대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도 언젠가는 당연한 기준이 돼야 한다.
수원시가 시작한 이번 시범사업이 그 당연함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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