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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2차 '국정원 대학살'

기사승인 2017.06.14  1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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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공요원 대신 민변출신의 변호사와 호남출신 좌경화 인사들이 무시험 특채로 채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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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타운

국정원은 국가안보와 체제수호의 막중한 임무를 띤 정보기관이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나라인 만큼 국정원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임무가 막중한 만큼 권한도 크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기관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고초를 겪는다.

국정원이 수난을 겪는 것은 태생적 운명이다. 대한민국의 정보기관으로서 북한과 대결해야 하고, 일부 정치권은 북한과 과도하게 밀착되었기에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국정원에는 피바람이 분다. 그래서 북한과 과도하게 밀착한 사람, 정체성이 불분명한 사람이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마다 국정원은 탄식에 빠진다. 학살의 쓰나미가 국정원을 덮치리라는 예감 때문이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자 이번에도 쓰나미는 어김없이 국정원을 덮치고 있다. 문재인은 국정원을 때려잡는 방법으로 크게 두 가지를 내세우고 있다. 국내파트 폐지와 보수정권 당시 국정원 적폐청산이다. 명분은 그럴 듯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국정원에 대한 학살과 보수정권에 대한 보복임에 다름이 아니다.

국내파트를 폐지하겠다는 것은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명분이지만 들여다보면 그것은 간첩 잡는 기능을 폐지하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이 했던 일을 조사하겠다는 것은 지난 정권의 먼지를 털어 보복의 칼을 휘두르겠다는 다른 표현인 것이다.

공산주의자라는 소리를 듣던 문재인과 국정원은 상충살의 궁합이다. 문재인은 김정일 정권을 대변하며 결재를 받던 사람이고, 국정원은 김정일 정권을 몰락시키는 임무를 가진 집단이다. 이 두 개의 마주 달리는 기관차가 권력의 정점에서 조우했으니 하나는 부서질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김대중 때도 그랬다.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자 당시 국정원 요원들을 대거 숙청했다. 이때 숙청된 요원들은 대부분 공안파트에서 간첩 잡는 일을 하던 요원들이었다. 김대중은 김일성이 심어놓은 간첩으로 지목받는 사람이다. 황장엽은 김대중이 북한으로부터 비자금을 받았던 것을 폭로하기도 했다. 김대중 역시도 국정원과는 상충살의 궁합이었던 것이다.

김대중은 국정원과 협력관계에 있던 북한 내 정보원들의 명단도 북한에 넘겨주는 바람에 국정원의 대공 커넥션을 아예 말살시켜 버렸다. 아마도 문재인은 김대중보다 한 술 더 뜰 것 같다. 김대중은 공안요원 581명을 잘라냈지만 문재인은 아예 국정원으로부터 간첩 잡는 기능을 빼앗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김대중이가 대공 활동망을 말살시켜 버린 후에 이것을 복구하기에는 수많은 땀과 자금이 투입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문재인이가 국정원의 손발을 자르려고 하고 있다. 이번에는 얼마만한 국정원 요원들이 실업자가 되고, 간첩 잡는 기술자들이 어느 동네에서 그저 그런 시다바리로 세월을 보내게 될까.

간첩 같은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에서는 간첩 잡는 공안기관은 고난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김정은이가 수시로 미사일을 쏘아대고 호시탐탐 불바다 타령을 들어야 하는 나라에서는 간첩 잡는 공안기관은 그 능력을 철저히 보호해 줘야 한다. 간첩 잡는 국정원이 나쁜 것이 아니라 국정원을 나쁘게 보는 대통령이 나쁜 것이다.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 나라에서 국정원의 비극은 계속된다.

김대중의 '국정원 대량학살사건'

김정일이 사망한 사실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던 국정원이 동네북 신세로 전락했다. 정보수집이라는 업무를 위하여 막대한 예산과 권한을 주무르고 있는 국정원으로서는 맞아도 싸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무능한 국정원을 질타하는 데에는 여야가 따로 없이 나서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무능한 국정원'의 원인에 대해서 민주당 측에서는 상기해야 할 사건이 있다.

대공정보업무는 한마디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무능한 국정원은 바로 이런 기술의 단절에 있었다, 임진왜란 때 수많은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감으로서 백자제작 기술이 단절되었 듯이, 공산당과 싸우며 연마했던 대공정보업무의 '기술'이 면면히 대를 이어 내려오다가 그 명맥이 끊어졌던 것은 김대중 정권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1998년 2월, 김대중은 당선 제일성으로 이런 발언을 했다. "나는 정치보복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정치보복을 하지 않겠다" 그러나 김대중은 1998년 4월 속칭 '국정원 대량학살사건'을 일으켰다, 엄연한 정치보복이었다. 김대중의 어록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나는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후 한 번도 거짓말을 해본 적은 없다. 다만 약속은 안 지킨 일은 있다".

김대중이 정권을 잡았을 때 가장 먼저 손을 본 것은 국정원이었다. 대한민국 종북좌익의 원조이자 거두였던 김대중으로서는 국정원과 악연이 깊었다. 김대중은 일본에서 반국가 활동을 하다가 국정원에 의해 국내로 납치된 적이 있었고, 김대중은 국정원으로부터 암살 위협을 받고 있다는 공갈을 전가의 보도처럼 선거에 이용하곤 했었다.

1998년 4월 1일, 국정원 직원들은 만우절 같은 소식을 들어야 했다. 재택근무를 하라는 명령이었다. 구조조정 명분으로 한 순간에 책상이 없어진 직원은 무려 581명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대공활동의 전문정보 수사요원들이었고, 이들의 70%가 영남 출신들이었다. 앞에서는 정치보복은 없다는 미소를 흘리고 뒤에서는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국정원의 '피의 숙청'이었다.

‘국가정보원을 사랑하는 모임’의 대표이자 ‘국가안보기능회복추진위원회’ 상임대표인 송영인은 숙청된 직원들의 기준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첫째, 김대중을 싫어하는 사람, 둘째, 이회창을 지지한 사람, 세째, 한나라당의 고위당직자와 친분이 있는 사람, 순이었다. '국정원 대량학살사건'에서의 도살자는 김대중의 심복이었던 이종찬 국정원장과 이강래 기조실장이었다.

김대중이가 보수우파로 부터 빨갱이라는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김대중은 국정원만을 학살한 것이 아니라 아예 대한민국의 대공 활동을 무력화 시켰다. 공안기관 대공경찰 2500명의 자리가 없어졌고, 기무사 요원 600여명, 공안검사 40%가 자리를 잃었다. 반국가 활동의 전력이 있던 김대중으로서는 이들을 그냥 두는 것은 뒤통수가 근질거릴 일이었을 것이다.

이들이 쫓겨난 자리에는 민변출신의 변호사와 호남출신의 좌경화 인사들이 무시험 특채로 국정원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대공 업무에 대한 자질이나 간첩 잡는 교육은 무시되었다. 노무현 정권 당시 '김대중의 숨겨진 딸'에 대한 시사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는데, 당시 김대중의 숨겨놓은 딸을 유치원으로 데려가는 임무를 맡았던 사람들이 국정원 직원이었다.

대통령의 숨겨진 딸을 유치원으로 데려가는 일이나 하던 정보원들이 무슨 수로 간첩을 잡을 것인가, 김대중, 노무현 정권 당시에는 간첩 수준의 인간들이 권력의 핵심부에 있었던 탓도 있지만 간첩을 잡았다는 뉴스가 거의 없었다. 간첩이 잡히기보다는 비밀 정보업무를 하던 정보원이 민간인에게 들켰다는 뉴스가 더 많았다. 좌익정권의 국정원은 미션임파셔블의 탐 크루즈와는 거리가 멀고 일반 절도범 수준이었다.

김정일이가 황천길에 올라도 국정원이 모를 수밖에 없던 이유는 순전히 국정원의 손발이 묶여있기 때문이었다. 기술자들이 대거 잘리면서 대공정보 수집능력은 탐문 수사나 하는 파출소 순경 수준이 되어버린 것은, 이런 대공기관 무력화의 원인은 순전히 김대중 때문이다.

민주당에서는 국정원만을 탓할 일은 아니다. 정권 교체 후에 대공수사 라인을 복원 시키지 않은 이명박에게도 원인은 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에서도 그리 화 낼 일은 아니다. 외양간을 고치는 것은 소 잃기 전에 하는 법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국정원의 대공업무 라인을 복원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김동일 칼럼니스트 tapng9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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