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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사건, 광주인들의 주장과 검찰수사결과 차이

기사승인 2017.01.17  16:4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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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수특공조와 시위대 사이에 벌어진 건물 내부의 교전과정에서 발생한 것

   
▲ ⓒ뉴스타운

5.18사건, 광주인들의 주장과 검찰수사결과 차이

김영삼의 객기에 고무된 광주인들은 1994. 5. 14. 정동년 등 광주 떼거지 616명이 전두환 등 군부요원 35명을 상대로 고소고발을 했고, 검찰은 국방부검찰부와 공동으로 이를 14개월에 걸쳐 조사한 후 1995. 7. 18. “5. 18 관련사건 수사결과”를 내놓았다. 수시기간 내내 광주인들은 7개의 허무맹랑한 주장을 지속적으로 제시했고, 검찰은 이에 대한 주장이 모두 허위주장임을 “5. 18관련사건 수사결과” 197-216쪽에 걸쳐 증명했다. 7개의 허무맹랑한 주장은 아래와 같다.

1. 발포경위

광주의 주장 : 공수부대의 발포는 5.10. 23:00경 광주역 앞에서 시위 군중에 발포하면서 시작되었고, 21일 13:00경 도청 앞에서 그 절정을 이뤘다. 이는 시위대 차량돌진을 저지하기 위한 자위목적의 우발적 사격이 아니라 광주시민들의 공분을 고조시키기 위해 사전에 기획된 발포였다.

수사결과 : 최초발포는 5. 19. 17:00경 11공수 63대대 장갑차가 광주고에 이르렀을 때 시위대가 장갑차를 포위하고 불붙은 짚단으로 장갑차에 불을 붙이려 하자 승무원 장교가 해치를 열고 나와 위협사격으로 공포를 쏘는 과정에서 고교생 1명이 충격으로 인해 부상을 당한 순간에 이루어 졌다. 5월 20일 23:00경의 발포는 3공수여단 5개 대대가 광주신역 일대에서 시위 군중에 포위되었을 때 자위목적으로 이루어졌다. 5. 21 발포는 시위대가 장갑차 대형버스 등을 지그재그로 몰며 공수대열 가운데로 돌진하여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중상을 입는 과정에서 장교들이 자위적 목적에서 발포한 것이다. 이러한 사격은 자위적인 성격의 것이었지, 고소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명령권자의 조직적인 발포명령에 의한 것도 아니었고, 광주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내기 위해 기획한 사격은 아니었다고 판단된다.

2. 공수부대 지휘권의 2원화 여부

광주의 주장 : 진압부대에 대한 지휘는 계엄사령관-2군사령관-정교사령관-31사단장에 이르는 공식적인 지휘계통을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전두화-정호영으로 구성되는 검은 세력에 의해 지휘되었다.

수사결과 : 전북 금마 주둔의 7공수를 전남대 등 3곳에 배치한 것은 육본이 5월 17일 자정, 전국 92개 대학에 계엄군을 배치하는 전국적 조치의 일환이었고, 광주 시위대 진압에 7공수가 투입된 것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광주에서만 시위가 벌어졌고, 경찰이 능력의 한계로 계엄군의 투입을 강력히 요청하는 상황에서 비롯되었고, 이후의 지휘는 정상적인 군 지휘계통을 따라 이루어졌다.

3. 군이 무기피탈을 고의로 방치했다

광주의 주장 : 계엄군은 학살만행을 사전에 기획했다. 그 기획에 따라 시민들이 무기를 탈취하도록 유도하여 광주시민들을 ‘총기를 든 폭도’로 형상화하고, 그것을 빌미로 대량학살을 실천했다.

수사결과 : 광주시민에 의한 무기탈취는 5. 19. 15:15경 기독교방송국에서 이루어졌다. 시위대가 방송국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31사단 병력으로부터 M16소총 1정을 탈취했다. 5. 20. 23:00경 광주세무서를 방화하는 과정에서 지하실 무기고에서 카빈총 17정을 탈취하고, 5. 21. 13:00경 광산 하남 파출소에서 칼빈총 9정이 탈취되는 등 이후 본격적인 무기탈취가 이어졌다. 그러나 군은 그 이전에 두 차례에 걸쳐 예비군 무기고에 있는 소총과 실탄을 회수하여 군부대에 보관하는 등 무기탈취를 예방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시위대의 무기탈취 속도가 원체 빠르고 계엄군은 시외곽으로 철수할 때까지 병력운용을 여유롭게 할 수 없고, 유린당하는 것을 피하기에 급급해 했다. 이러한 상태에서 군이 의도를 가지고 무기탈취를 방치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4. 헬기 기총 소사 여부

광주의 주장 : 광주 일부에서 헬기의 공중사격으로 인해 AKSAG은 피해자가 발생하였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조비오 신부, 이광영 승려, 아놀드 피터슨 목사 등이 헬기기총 소사를 목격하였다.

수사결과 : 육군 항공단 근무자들은 대량살상을 유발하는 기총소사를 결코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군 기록을 보아도 5. 21. 당시 2군사령부가 전교사에 수송용 헬기 UH-1H 10대, 코브라 무장헬기(AH-1J) 4대를 지원하고, 사태기간 중 헬기가 총 48시간 무력시위를 하였다는 기록 이외에 다른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다.

목격자 이광영 승려는 5. 21. 14:00경 헬기사격으로 15-16세의 여학생이 어깨부위를 피격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그를 적십자 병원으로 후송했다 진술한다. 병원기록을 확인하였지만 그런 기록은 없었다. 조비오 신부가 헬기 피격자로 지명한 홍란은 헬기가 아니라 옥상에 있던 계엄군의 소총에 맞았다고 진실한다. 아놀드 신부는 헬기에서 불을 뿜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가 본 불빛은 충돌방지용 불빛이었다. 그와 헬기 기총소사를 목격했다는 사람들은 다 누구로부터 전해들었다는 말이었다. 모든 병원기록을 검토해 보아도 헬기에 의한 피해자는 찾을 수 없었다. 광주에서 사망한 민간인 165명 중 헬기 총상은 찾을 수 없었다.

5. 대검 및 화염방사기 사용 여부

광주의 주장 : 대검을 총에 장착하고 마구 찔렀다. 화염방사기를 마구 사용했다.

수사결과 : 착검상태에서 시위를 진압한 일부 부대원이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기에 그 가능성은 인정이 된다. 하지만 화염방사기를 사용했다는 근가는 없다.

6. 시 외곽에서의 대규모 파해 여부

광주의 주장 : 계엄군이 광주에서 철수한 이후 광주에 이르는 수많은 도로와 마을에서 계엄군이 마구 학살했다.

수사결과 : 시 외곽 지역에서 광주의 시위가 타지역간으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계엄군에 의한 소규모 피해들은 있었지만 대량 살상은 없었다.

7. 사망자 수

광주의 주장 : 2,000명 이상이 살해되어 생매장되었다.

수시결과 : 모든 기록을 종합한 결과 5. 18관련 광주에서의 사망자 수는 군인 23명, 경찰 4명, 민간인 166명이다. 그 이상은 발견할 수 없었다.

결       론

5월 21일의 상황기록을 보면 5월 21일, 13:00시부터 시위대는 엄청난 분량의 소화기를 휴대하고 사격들을 하였고, 오후 2-3시 경에는 건물 옥상들에 기관총을 거치하고 사격을 가했다.

15-16시 경, 20사단 61연대장이 11공수와 도청방어 임무를 교대하기 위해 UH-1H 헬기를 타고 고공 정찰을 나갔다가 폭도로부터 6발의 총격을 받았고, 선무방송을 하던 또 다른 헬기 UH-1H 가 또 다른 6발의 총격을 받고 긴급히 귀환했다. 이와 같이 높이 떠다니는 헬기에도 사격이 가해지는 판에, 헬기 한 대가 10층짜리 전일빌딩의 7, 8, 9, 10층에 정지하여 소총을 사무실 바닥, 천정, 벽에 마구 달렸다는 상상을 다른 기관도 아닌 과학수사의 최고봉을 자랑하는 국과수가 내놓았고, 수많은 언론들이 이에 춤을 추면서 5.18의 성역을 재건하여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국과수가 미쳤고, 광주가 미쳤다. 전일빌딩 내부의 총상은 5월 27일 광주수복 작전에 투입된 30여명의 공수특공조와 기관총을 발사하는 40여명의 악착같은 시위대 사이에 벌어진 건물 내부의 교전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지만원 박사 j-m-y82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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