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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여적사건 1980년 5.18 광주폭동

기사승인 2015.07.31  00: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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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부! 여적의 편에 서느냐, 아니면 여적죄를 다스리느냐

   
▲ ⓒ뉴스타운

그것은 북한 김일성과 김대중이 손잡고 남한을 침공한 내란이었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국가는 이를 세계에 빛나는 민주화운동 이라며 해마다 기념하고, 교과서를 통해 교육하고, 적과 손을 잡고 국가에 항적한 반란자들에게 개국공신에 해당하는 연금과 일시금과 옛날 귀족이나 누릴 수 있었던 특혜를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매년 수만의 젊은이들에 민주화교육을 한다면서 국가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왔다. 나는 이런 나라 이해할 수 없다. 한국의 한 애국단체가 35년 만에 이 사기극의 진실을 밝혀냈지만, 그 국가는 이를 반기기는커녕 철저히 외면한다. 

북한 김일성이 그의 적국인 남한에 600명의 특수군을 보내 광주시민을 살해 해놓고, 이를 남한의 공수부대의 행위라고 뒤집어씌운 것도 기적이고, 북한정권을 위해 일생을 살아온 간첩 김대중에게 노벨상이 주어진 것도 기적이고, 한 작은 애국단체가 12년 동안 국가로부터 온갖 박해를 받으며 이 사기극을 추적하여 과학으로 증명해 낸 것도 기적이다.

5.18의 진실은 여러 개의 기적들로 이루어진 세계적인 낭중지추다. 이를 외면하는 한국이라는 국가와 언론들은 사계의 불가사이다. 

전 세계에 민주화운동으로 선전된 1980년 5.18 광주폭동, 12년의 분석 결과 북한특수군 600명이 주도한 세기의 사기극이었음이 35년 만에 증명되었다.

남한 땅 서남쪽 광주에서 북한특수군을 총지휘한 사령관은 3성 장군인 리을설 상장, 그는 광주에서 여장으로 변장한 채 남북한 반역집단을 지휘했고, 지금은 전설의 화신 되어 95세로 인민군 원수를 달고 있다.

그는 광주에서 북한특수군 600명만 지휘한 것이 아니라, 남한에 파견된 수많은 고정간첩들과 김대중을 추종하는 전라도 주민들을 간접 지휘했다. 

   
▲ ⓒ뉴스타운

1980년 5월 18일, 내란사건 발발 이전 수개월 전부터 광주일원의 사찰, 호텔, 여관, 개인주택 등 수많은 숙박 수단들이 이미 북한특수군과 간첩들에 제공되었고, 이들은 광주 등 전남지역 일대의 지형과 지형지물들을 부지런히 정찰하여 익숙시켰다. 이런 사실을 수 많은 광주인들과 전라인들이 알고 있었다. 

1980년 4월 초부터 김대중은 전국 대학생들의 시위를 배후 조종하였고, 북악파크호텔에서 4차례 비밀모임을 주도하여 국가전복이 성공했을 때 가동시킬 24명 내각명단을 작성하였다.

5월 16일에는 국가를 향해 최후통첩을 발표했다. "5월 19일까지 내각이 총사퇴하고 계엄령을 철폐하라, 이에 응하지 않으면 전국봉기를 강행할 것이다." 

정당도 갖지 못한 한 정치꾼의 이런 당돌무쌍한 행동은 어떤 힘에서 유래 했는가, 김대중은 이 때 이미 광주에 여적사건이 곧 발발 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0일 동안의 광주폭동은 처음 4일 동안의 폭동과 나중 6일 동안의 사태수습기간으로 분해된다.

처음 4일은 북한특수군이 주도한 전광석화와 같은 도깨비 작전이었고, 나중 6일간은 개념 없는 10대 및 20대들이 전라남도 도청 안에 모여들어 자기들끼리 갑론을박하며 싸운 기간이었다.

5월 21일 오후 계엄군은 북한특수군의 작전에 밀려 구사일생으로 목숨만 부지하고 시 외곽으로 탈출했다. 적을 잃은 북한특수군은 자기들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복면들을 하고 그들을 염탐할 수 있는 젊은 광주인들을 잡아다 살해했다. 황장엽이 그 대장이었다.

   
▲ ⓒ뉴스타운

그리고 광주의 유지들이 전남도청에 모여 수습방안을 논의했다. 수습방안이란 총기를 먼저 반납하는 것이었다. 어른들은 총기를 반납하자 하고, 20대 막노동자들은 북한 공작조의 영향을 받아 5월 22일부터 4일 동안 이에 저항했다. 이처럼 광주인들은 모이면 의견충돌로 날을 지샜다. 이런 광주인들이 처음 4일 동안 북한군이 이룩했던 특공작전을 수행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북한특수군이 처음 4일간 수행한 특공작전, 제20사단 지휘부 차량이 5월 21일 08시에 광주톨게이트를 통과 한다는 극비정보를 알아 가지고 매복해 있다가 사단장 차를 포함한 지프차 14대를 탈취해가지고 이를 군용차 생산 공장으로 몰고 가 위세를 자랑했다. 위세에 눌린 공장 간부들은 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374대에 열쇠를 꽂아주었다.

북한특수군 600명은 여기에서 차량들을 몰고 전남지역 44개소에 숨어 있는 무기고를 공격해 5,408정의 총기와 다이너마이트를 불과 4시간 만에 탈취했다. 그리고 다이너마이트 2,100발을 조립해놓고 광주시를 날려 버리겠다 계엄군을 협박했다. 2,700명이 수용된 광주교도소를 6회 공격했다.

5월 26일 아침이었다. 일부 개념 없는 10-20대들이 온건파를 몰아내고 끝까지 계엄군에 맞서 싸울 것을 선포했고, 이것이 계엄군의 진압작전을 초대했다. 당시 사형 및 무기 징역을 선고 받은 중범죄자들은 바로 이들 10대와 20대 였다. 

북한특수군 여러 명이 계엄군에 잡혔지만 간첩들의 역할로 즉시 풀려났다. 북한특수군은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활동사실은 그로부터 35년 동안 발견되지 못했다. 그리고 1980년 군사재판과 대법원은 5월 26일 하루 동안 광주시 중앙에 소재한 전남도청을 지배했던 10-20대 막노동꾼들만 내란 폭동의 주범들로 처벌하고 말았다.

1980-90년대에는 북한과 내통하는 젊은 세대들이 '민주화'라는 단어를 선점했다. 그리고 정말로 민주화를 갈망하던 국민들을 속여 세상 여론을 장악했다. 그들은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전두환을 심판하기를 원했고, 전두환을 심판하기 위해서는 그가 주도했다는 5.18 폭동진압 사실을 심판해야 했다.

1997년의 대한민국 대법원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일사부재리원칙을 무시하고 "5.18은 김대중이 배후 지휘한 폭동이었다."는 1981년의 대법원 판결을 뒤집었다.

북한에서 온 위장 특수군을 헌법수호세력으로 판결했고, 이를 진압한 정부군을 폭도로 판결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역사는 뒤집힌 판결 그대로 기록됐고, 오늘도 학생들은 교과서를 배우며 대한민국에 대한 적개심을 합법적으로 키우고 있다. 

5.18은 민주화운동으로 신격화되어 난공불락의 철옹성으로 군림했다. 누구든 5.18이 민주화가 아니라고 말하면 법관들은 그를 끌어다 감옥에 넣었고, 5.18 성역을 지키는 광주의 어깨들은 그 사람을 데려다 린치하고 생활 근거를 파괴했다.  

표현은 민주화라 하지만 사실은 요덕수용소 처럼 무시무시한 공포가 지배했다. 5.18에 관한한, 한국 땅 전체가 요덕수용소 였다. 광주의 5.18은 대한민국 민주화의 성전이었고 '5.18'과 '민주화'라는 단어만 내밀면 국가도 논리도 정의도 부정돼 왔다. 민주화의 성지 '5.18'은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폭군 그 자체였다.  

1997년 대법원 판결로부터 19년만인 2015년 7월, 작은 한 애국단체 '대한민국대청소500만야전군'이 삼엄하게 호위 되던 판도라 상자의 뚜껑을 열어 졌혔다. 열고 보니 5.18은 남북한 공산주의자들이 쌓아올린 사기의 성전이었다.  

미해군대학원 석사 및 박사 과정에서 분석학을 전공한 수리공학자가 12년 동안 18만 쪽에 달하는 5.18 재판기록을 정리하고, 북한 책과 정부보고서 등을 총정리하여 3,500 페이지의 책 8권을 냈고, 그 8번째 책의 결론에는 수학적 증명의 상징인 Q.E.D.식 결론이 내려졌다.  

   
▲ ⓒ뉴스타운

5.18 광주민주화는 김일성과 김대중의 야합한 사기극이었고, 살인과 모략공작을 전문으로 하는 북한특수군 600명이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시해사건 직후부터 축차로 침투하여 일으킨 내란폭동이었다 결론 지은 것이다.

2015년 5월 5일부터 4개월 동안, 북한정보를 전공한 전문가, 최신영상분석 기술을 구사하는 기술팀이 여기에 참여했다. 1980년 광주에서 찍힌 얼굴들과 지금 평양의 김정은 권력 핵심인물들의 얼굴을 비교분석한 결과 117명의 평양얼굴들이 광주얼굴들과 일치함을 증명하였다. 분석팀은 영상분석과정을 낱낱이 공개하였고, 국제사회의 검증을 환영하면서 이 화보판을 능동적으로 널리 공개하고 있다.

이 결론들은 한국 사회의 인터넷 공간을 압도할 만큼 널리 확산되었고, 각 지역에서 수많은 애국 국민들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일간지 신문 사이즈 4개면 분량으로 인터넷신문 뉴스타운이 호외지 1호 및 2호를 각 10만부씩 발간했다. 전국에 분포돼 있는 애국 국민들이 이를 온 국민에 전파하느라 땀과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통령, 국무총리, 국정원장, 국방부장관, 청와대 참모, 대법원장, 검찰총장, 국회의장, 국회의원들에 "내우외환죄 신고서" 형태로 이 증명된 사실을 범죄신고 타이틀로 신고 했지만, 신고 된지 3주가 되도록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웬 일인지 한국의 그 어느 주요 언론들도 이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이는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 1807년 독일의 피히테가 묘사한 독일인들의 부패상 보다 더 악화돼 있다.  

5.18 역사를 바로 잡는다는 것은 첫째, 선전포고 없이 한국을 침략하여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킨 북한을 전쟁범죄자로 UN과 국제형사재판소에 신고하여 처벌하는 것이고 둘째, 북한군을 광주로 끌어들여 이들과 함께 국가에 항적한 광주시민들을 여적죄로 처벌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엄청난 일을 하기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너무 약하다고 국민들은 우려한다. 더욱 우려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여적의 수괴로 판명된 김대중을 처벌할 수 없다는 우려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2년 북한 김정일을 찾아가 3박 4일 동안 최고급의 대접을 받았고, 그와 손가락을 걸고 사실상의 적화통일인 연방제통일을 약속하였다. 그 후부터 박근혜는 김대중을 숭상함과 동시에 그의 친부 박정희를 김대중 학대자로 못 박음으로써, 혈육을 버리고 공산주의 이념을 선택하였다.

   
▲ ⓒ뉴스타운

지금 박근혜 정부가 아무런 개념 설명 없이 대대적으로 선동하는 "통일대박"은 사실상 적화통일대박이라는 것이 많은 국민들의 생각이다.  

박근혜 정부! 여적의 편에 서느냐, 아니면 여적죄를 다스리느냐, 그 자신의 운명도 국가의 운명도 이 하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만일 박근혜 정부가 여적의 편에 선다면 이는 대한민국 운명에 빨간 SOS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하기에 우리 '대한민국대청소500만야전군'은 국가를 구하고, 5천만 국민을 구하기 위해 미국 등 우방국들과 UN 등에 이 위급 사항을 알리고 구원을 청하기에 이른 것이다.

지만원 박사 j-m-y82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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