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장엽 전 북한최고인민회의 의장^^^ | ||
황장엽 씨는 1997년 4월, 흔히 말하는 월남귀순이나 탈북이 아닌 망명이라는 특별한 형식으로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물론 황장엽 씨가 북에서 ‘조선노동당 국제담당비서’라는 높은 직위에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 할지라도 귀순이 아닌 망명으로 처리 했다는 것은 엄청난 파격이라고 할 것이다.
이른바 망명(亡命)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본국에서의 정치적·종교적·인종적 박해 혹은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국에 보호를 요청하는 행위”로 설명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黃 선생의 祖國은 여전히 ‘조선인민공화국’ 인 것이며, ‘조선노동당 당원이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公民’의 자격을 포기하지 않고 미제식민지 파쇼통치가 자행되고 있는 ‘남조선’에 임시로 정치적 피난처를 마련한데에 불과 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황장엽 씨가 1986년 5월 ‘조선노동당 국제담당비서’ 자격으로 소련을 방문하여 88올림픽 공동개최를 지원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테러 가능성’까지 내비췄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문제가 되고 있다.
황장엽 씨가 소련 등 동구권을 상대로 김일성지시와 노동당 방침에 의하여 ‘올림픽 공동개최’ 활동을 했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당연한(?) 일’ 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1980년 5.18과 1986년 5.3 폭동에 대하여 “제국주의와 파시즘에 대한 남한 민중들의 투쟁이 더욱 조직화돼 미국의 식민지배가 끝나가고 있다"고 피력했을 당시의 대남정세 및 상황 인식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배경과 경위에 대한 해명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내란의 수괴로 군사재판까지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깊숙이 관련 된 5.18 사태에 관한 북의 인식과 평가 도는 개입여부, 1946년 10월 1일 대구 폭동 이래 최악의 도시폭동으로 김문수 현 경기지사가 주동이 됐던 5.3 주안 폭동에 대한 북과 연관성 및 평가에 대한 ‘증언’이 불가피 해 졌다.
뿐만 아니라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중반에 벌어진 남북해외 범민련결성, 남한 내 전민련 결성과 민중당 창당 등 황장엽이 北에서 지득한 ‘감춰진 진실’을 밝히는 일이야말로 망명자라는 ‘나그네’로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의 지원과 보호를 받으며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아 자유와 권리를 누리며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도리이자 의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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