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성 : 김일성종합대학 박사원, 교수로 승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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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성 : 김일성종합대학 박사원, 교수로 승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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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 탈북자들의 말 쉽게 믿지 말라

▲ ⓒ뉴스타운

장진성, “나는 김일성종합대학 박사원졸업생”

2014.6.27. YTN에서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여 장진성을 구름 위로 띄웠다.  YTN은 장진성을 통전부의 대남선전요원, 김일성종합대학 박사원(대학원), 네델란드 모 대학의 교수, 영미권 베스트셀러 10위, 세계가 주목한 탈북수기, 탈북수기 호평, 타임지 표지인물 등을 사진 또는 자막으로 내보내면서 굉장한 사람이라고 소개를 했다.

김일성종합대학에 다니지도 않은 사람이 “김일성종합대학 박사원”을 졸업했다는 것은 브레이크 없는 자기 미화용 허위선전 결과다. 그는 김정일을 20분 이상 접견한 “접견자”라 당으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고 자랑했다. 그는 “김정일 접견자” 자격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김정일을 희화하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장진성의 자기선전: 58세의 지존 김정일이 장진성을 2번 불렀고, 마주한 자리에서 “김정일이 자꾸만 울었다”

2012.5.7. 그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영장의 총대 위에 봄이 있다’는 시를 썼고, 그 시가 1999년 5월 22일 노동신문에 실렸는데, 이 시가 김정일로부터 “선군시대의 모범 시” “나의 작가”라는 극찬을 받았다고 했다. 여기에서 ‘영장’이라는 의미는 영도하는 장군 김정일‘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영장의 총대 위에 인민의 희망과 행복이 있다는 뜻이다.

선군정치를 찬양한 이 시로 인해 증인은 28세의 나이로 당시 58세였던 김정일을 두 차례 만났다 했다. 그런데 자기를 만난 김정일이 “자꾸 울더라”이렇게 말했다. 북한의 지존 내지 존엄으로 신격화 된 당시 58세의 김정일이 28세의 신참 시인을 두 차례씩이나 불러놓고 “자꾸만” 울었다는 이야기가 남한 사회에서는 아무런 의심 없이 진실로 받아들여졌다. 만일 장진성의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세계적인 뉴스 감일 것이고 김정일 연구에 색다른 논문주제를 던져주었을 것이다.

1999년에 “선군정치 찬양시‘와, ’내딸을 백원에 팝니다“ 같이 썼다

장진성은 2004년 1월에 탈출했다.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 라는 시는 1999년에 썼다. 이 시는 몸이 아픈 어머니가 딸을 시장에 내놓고 100원에 팔아 그 돈으로 빵을 사다가 딸에게 먹였다는 북한체제 고발시다. 만약 발각되면 반동 반역죄에 해당하는 위험한 시다. 그 시가 담긴 노트 두 개를 통전부에 근무하면서 5년 동안 감추어놓고 있다가 2004.1월 여하 20-30도를 맴돈다는 두만강을 건너 폐가에서 숨어 있다가 12명의 공안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2,000 달러 규모의 돈이 들어 있는 외투는 버리고 양말도 신발도 버리고 도망 나오면서 노트 2권만은 가슴에 품고 한국에 왔다는 것이다.

소름 돋는 이중 플레이

결국 장진성은 같은 1999년에 김정일에 충성하는 시를 써서 김정일 접견자가 되었고, 다른 한편 굶주린 모녀의 비참함을 고발하는 시를 동시에 썼다는 것이다, 그는 그의 탈북스토리에서 남한 책을 북한 친구에게 보여준 것에 대해 엄중한 조사를 받은 후 “김정일 기쁨조 경음악단”에 있던 친구 황영민과 함께 탈출했고 북한체제에 염증을 느껴 탈출했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체제에 염증을 느껴 탈북했다는 것은 이해되기 어려운 대목이다.

과연 혼자 살려고 부인, 아들, 부모 자매 지옥으로 던졌을까?

그에게는 부인과 아들 위금성이 대동강구역 문수동에 살고 있었고, 68세의; 아버지와 모친 그리고 누이와 조카 등이 성분대접을 받으며 평화롭게 잘 살고 있었다. 장진성은 늘 말했다, 자기의 죄는 3족이 멸망당하는 중범죄라고. 체제가 싫어서 탈북했다는 말은 설사 그것이 본인에게는 사실이라 해도 남들이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의혹이 가시지 않는 것은 그가 3,000 달러를 어떻게 구했느냐는 것이다. 그의 봉급은 2,500원(10 달러 정도)이었다고 했다. 탈북할 때 그는 부모 가족들과 의논 없이 혼자 결행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어마어마한 달러는 어디에서 났는가?

월급 10 달러 받던 장진성, 3,000달러의 거금 어디서 났나?

그리고 그는 서울에서 결혼하여 2012년 말 아이를 출산했고, 아이를 부모에게 보여드리지 못해 안타깝기 이를 데 없으며, 이런 걸 생각할수록 북한체제가 증오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부모는 대동강 구역에 남겨둔 그의 아들 위금성을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을지 모른다. 어쨌거나 지금 장진성은 남한에서 상종가를 치며 호황을 누리고 있다.

반면 북에 남은 그의 가족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로 숙청을 당했을까. 비참하게 숙청당할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그가 과연 그의 가족들을 지옥의 불구덩이로 몰아넣었을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그가 털어놓은 말들 중에 진실이 얼마나 들어 있을까? 내가 열심히 읽고 또 읽어 평가한 그의 탈북스토리는 상황과 이치에 맞지 않고 앞과 뒤가 다르고 2009년 말이 다르고 2011년 말이 다르다. 그의 진정한 탈북스토리는 아직도 감추어져 있다. 이것이 그의 탈북스토리를 깊이 분석한 내 판단이다.

교훈: 탈북자들의 말 쉽게 믿지 말라 

여기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털어놓는 탈북이야기는 대부분 이렇게 가짜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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