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이상의 독재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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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이상의 독재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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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대중 및 그의 주구 임동원으로부터 수시로 도청 당했다

▲ ⓒ뉴스타운

빨갱이들의 엉구렁, 요설로 밥벌어먹은 인간들 무엇이 부족해 또 요설질 하는가?

최근 빨갱이 언론들에서 대접받으면서 요설실력으로 밥벌어먹던 인간들이 너도 나도 나사서 자기가 이명박과 박근혜로부터 탄압을 받았고,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며 은근히 존재감을 부각하려 애를 쓴다. 이들은 객관적으로 표현해 무슨 탄압을 받았다는 것인가? 이들 대부분은 이명박 박근혜 시절에 방송 등 언론을 자기 선전수단이요 밥벌이 수단으로 마음껏 이용해 왔다. 그런데 무슨 블랙리스트 타령인가? 블랙리스트에 들어 있음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탄압받은 사례가 있는가?

나는 김대중 및 그의 주구 임동원으로부터 이런 탄압 받았다

필자는 1999년부터 살아있는 권력 김대중과 임동원을 빨갱이라 불렀다. 햇볕정책이라는 위장망을 만들어 김정일에 충성하고 그 졸개 노릇을 하고 있다며 구체적 사례를 수집해 공격했다. 국민들이 너무 모르기 때문이었다. 도시의 매미 소리가 점점 더 커지듯이 국민이 모를수록 공격 수위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의 총애를 받는 임동원이 국정원장이 되면서 필자는 1999년 11월부터 끈질긴 집중도청을 당했다. 이 사실은 2005.11.17 매체마다 대서특필됐다. 특히 동아일보에는 나의 얼굴사진까지 올라 “지만원이 주요도청 대상자”이고 모두 1,800여명이 도청당했다고 보도했다. 국정원 제2차장이었던 김은성은 검찰조사에서 “어쩐 일인지 지만원은 DJ가 가장 싫어하는 인물이고, 임동원은 수시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지만원에 대해 조사한 것이 뭐냐 등의 추궁을 받는 등 내 재임 기간중 지만원으로 인해 가장 큰 고통을 받았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사실 나는 김대중으로부터 많은 대우를 받았다. 심지어는 무슨 자리든 주겠다는 제안까지 여러 차례 받았다. 하지만 햇볕정책을 수행하고 봉이 김선달식 금강산 사업을 핑계로 합법을 가장하여 자금을 퍼붓는 것을 보고 “저 사람 빨갱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때부터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과 거래를 밀착 추적해 “북한지원백서”까지 만들었다.

필자는 1991년 “70만 경영체 한국군 어디로 가야하나”는 처녀작 단행본을 쓰고부터 거의 10년 동안 인생의 황금기를 누렸다. 1990년대에 방송, 신문에 프리마돈나가 되어 있었고, 대기업들로부터 강연이 쇄도했다. 대기업에 가면 기업 간부들이 현관에 도열하여 맞았다.

이른바 VIP강사의 대접을 받은 것이다. 당시 장관 봉급이 400만원일 때 강연료만 쳐도 월평균 1,000만원 이상을 벌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생활비가 들어오는 것이었다. 일예로 1995.4.25 매일경제신문은 당시 민간기업 연수원장들이 뽑은 10대 강사를 소개했고, 그 중에 필자의 이름이 있었다. 이들은 두뇌활동으로 연 억대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보도도 했다.

당시의 필자의 프로필이 이러했기에 1995년 초 김대중이 접근해왔고, 그의 요청에 의해 국제세미나에서 기조연설도 했고, 학술 세미나 차 중국에 가서 1주일 동안 같이 생활도 했고, 서울에서 그를 후원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설도 해주었다.

1995년 10월 28일 김대중이 중국 영빈관 조아대에서 “나는 노태우로부터 20억 받았다” 발언을 했을 때 필자는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1999년 그에 대한 햇볕정책의 정체가 드러났다. 나는 그 때까지 필자를 향해 웃던 김대중을 향해 침을 뱉았다.

1999년 후반부터 갑자기 모든 신문들이 칼럼을 써달라 부탁하는 일이 일체 중단됐다. 2개월 동안 빼곡하게 받아놓은 대기업 강연 약속이 한순간에 취소됐다. 업체 경영진단 건들도 취소됐다. 귀신이 곡할 일이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갑자기 정신적 공황이 엄습했다.

빨갱이 국정원장 임동원의 증명된 악행

2006년 5월 17일, 필자는 국가와 임동원을 상대로 5천만원 손해배상 청구소를 냈다. 청구이유의 서론은 임동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이유의 서론

“피고 임동원은 한낱 자연인에 불과한 원고가 햇볕정책을 비판했다하여 1999-2000년을 전후로 강연 등 스케쥴을 도청하여 수많은 강연기회를 차단했고, 일단 경고를 받은 기업체들은 지금도 원고를 초청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사실이 다시 2005년 11-12월에 각종 매체를 통해 알려지면서 ‘지만원은 도청 대상이다. 지만원에 전화하면 도청된다’는 정서가 팽배하면서 사람들이 전화접촉을 기피하고 있는 실정에 있습니다.”

“갑1의 경향신문은 ‘김전대통령의 대북관을 극렬 비판한 군사평론가 지만원씨를 도청. 강연일정을 파악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냈고, 갑2의 세계일보는 ‘특히 김씨(김은성)에 따르면 임씨는 지만원씨에 대한 관심이 컸다고 한다. 김씨는 임 전 원장은 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지씨에 대해 확실히 알아보라, 확실히 관리하라고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이런 지시는 김씨를 통해 감청담당부서인 8국에 그대로 전달됐다.

김씨는 예비역 대령인 지씨에 대한 관리는 국방부가 적당할 것으로 판단해 2-3차례 국방부에 따로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 . 임씨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반-햇볕정책 여론을 주도한 인사에 대한 도청을 집중함에 따라 임씨의 국정원장 임기 말인 2000년 말에서 2001년초 보수인사들이 도청리스트에 지속적으로 오른 것이다.’라는 기사를 게재했고, 갑3의 동아일보(2005.11.17) 동아일보에는 원고의 사진까지 올려 같은 기사들을 냈으며, TV 매체에까지 원고의 사진과 기사가 이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세인들이 원고를 기피인물로 마음에 새기기 시작했을 것이며, ‘지만원이 주요도청 대상자이고, 지금도 그럴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대폭 늘어났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원고에게는 측량될 수 없는 고통이요 피해인 것입니다.”

“강연과 컨설팅은 원고의 기본생계 유지수단이었습니다. 이를 도청한 것은 도청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일정을 취소시키는 행위로 종결된다는 것은 경험칙상의 결론입니다. 당시 원고는 5대 강사로 불려지면서 때로는 하루에 3건 정도씩(150-200만원 상당) 강연을 예약했는데 이 모든 것들이 어느 한 순간에 줄줄이 취소되어 정신적 공황을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한번 국정원의 권고를 받은 기업과 정부단체들은 다시는 원고를 강사로 부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단 한건의 강연초청이 없습니다.”

“아울러 김은성 차장의 증언대로 국정원 후배 그리고 권진호 당시 차장 등을 통해 회유와 협박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국가가 한 개인을 상대로 감청하고 탄압을 가한 행위가 원고에게 금전적으로 얼마의 손해를 끼쳤는지를 계산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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