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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5.18 환상 갖고 경거망동 말라

기사승인 2017.08.24  10: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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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기난사 등 조사하라는 문재인 대통령

   
▲ 광주 전일빌딩의 탄흔을 바라보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YTN 캡처) ⓒ뉴스타운

최근 문재인의 발언들을 보면 무게가 없고 가볍다. 해야 할 말, 신중해야 할 말, 이런것에 대한 개념이 없다. 문재인은 5.18왜곡 세력에 대해 뿌리를 뽑겠다고 했고, 우익들의 씨를 말리겠다고 했다. 도대체 한국의 대통령인지 북한 에이전트인지 헷갈린다.

5.18당시 전두환이 F-5E/F기에 포탄을 싣고 여차 하면 광주를 폭격하기 위한 대기명령을 내렸다는데 이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라고 국방장관에 명했다. 어떤 근거를 가지고 말한 것이 아니라 정신이 나간 어떤 조종사 한 사람이 지껄인 이야기를 대통령이 나서서 마치 그것이 거의 사실로 인정된 것인 것처럼 “철저히 조사하라” 한다.

티슈 종이조각보다 더 가벼운 입을 가지고 어떻게 대통령 노릇을 할 것인지, 얼마나 엄청난 저지레를 칠 것인지 소름이 돋는다. 지각이 있거나 품위라도 좀 있으면 절대로 전투기에 의한 항공폭격을 광주시민을 향해 기획했을 것이라는 막말은 하지 않는다. 문재인이 5.18 호위에 이성이 상실됐다.

전일빌딩 기총소사에 대해서도 철저히 조사하란다. 그런데 그건 이미 1995년 검찰이 14개월에 걸쳐 조사했고, 그 결과가 검찰보고서에 실렸다. 지금의 국방부가 다시 조사한들 사실을 조작하기 전에는 결과는 똑 같다. 전일빌딩 10층, 벽, 바닥, 천장에 골고루 나 있다는 여러 가지 종류의 탄흔을 놓고 아마 5.18 단체들과 광주시장이 국과수에 분석을 의뢰한 모양이다. 국과수의 한 감정관이 아마도 전라도인인 모양이다. 헬기가 호버링 상태에서 총을 쏘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를 감정서에 쓴 모양이다.  

과학수사대라는 이름을 내건 이 사람은 과학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어중이떠중이로 보인다. 헬기라면 가장 작은 것이 500MD다. 이 헬기가 기관총 방아쇠를 한번 당기면 최소한 기관총알  2,000발이 나간다. 그런데 전일빌딩 탄흔은 천장, 바닥, 벽에 골고루 나 있고, 구경도 M16 실탄인 5.56미리 등 제각각이며 그 수도 이 구경 저 구경 합쳐서 150 발이란다. 이는 군상황일지에 나와 있는 그대로 5월 27일 새벽 35명의 특전사 특공팀이 전일빌딩에 들이닥쳤을 때 기관총으로 무장한 45명의 폭도들이 저항하여 교전이 어우러졌던 교전자국이다.  

문재인은 또 발포명령자가 전두환이라며 전두환에게 기어이 발포명령죄를 씌울 테세다. 죽고 또 죽어도 전두환은 5.18현장과는 사돈의 팔촌 관계도 안 된다. 전라도에는 장군도 없고 영관도 없고 위관출신도 없는가? 양심이 있거든 직언하라. 전쟁만 나면 도망가는 하와이 18번지 출신이 아니거나, 평화 시에는 온갖 부정이나 일삼던 빈대들이 아니라면 입 달고 바른 말 좀 해보라.

이런 대목에 입 닫고 있으니 전라도 출신들이 뒤통수나 치는 치졸한 인간들이라 욕을 먹는 것이다. 전두환의 당시 군번이 군의 서열과 지휘계통상 발포 명령자가 될 수 있는 것인가를. 5.18 때만 해도 전두환은 최규하의 충복이었다. 나중에 대통령이 된 것을 놓고 시간의 서열을 무시하는 인간들, 협잡꾼이거나 모리배임에 틀림없다.  

           예나 지금이나 억측과 억지 쏟아내는 전라도 사람들  

김영삼의 객기에 고무된 광주인들은 1994.5.14. 정동년 등 광주 떼거지 616명이 전두환 동 군부요원 35명을 상대로 고소-고발을 했고, 검찰은 국방부검찰부와 공동으로 이를 14개월에 걸쳐 조사한 후 1995.7.18. “5.18관련사건 수사결과”를 내놓았다. 수사기간 내내 광주인들은 7개의 허무맹랑한 주장을 지속적으로 제시했고, 검찰은 이에 대한 주장이 모두 허위주장임을 “5.18관련사건 수사결과” 197-216쪽에 걸쳐 증명했다. 7개의 허무맹란한 주장은 아래와 같다.  

1. 발포경위  

광주의 주장: 공수부대의 발포는 5.10. 23:00경 광주역 앞에서 시위군중에 발포하면서 시작되었고, 21일 13:00경 도청 앞에서 그 절정을 이뤘다. 이는 시위대 차량돌진을 저지하기 위한 자위목적의 우발적 사격이 아니라 광주시민들의 공분을 고조시키기 위해 사전에 기획된 발포였다.  

수사결과: 최초발포는 5.19.17:00경 11공수 63대대 장갑차가 광주고에 이르렀을 때 시위대가 장갑차를 포위하고 불붙은 짚단으로 장갑차에 불을 붙이려 하자 승무원 장교가 해치를 열고 나와 위협사격으로 공포를 쏘는 과정에서 고교생 1명이 충격으로 인해 부상을 당한 순간에 이루어 졌다.

5월 20일 23:00경의 발포는 3공수여단 5개 대대가 광주신역 일대에서 시위군중에 포위되었을 때 자위목적으로 이루어졌다. 5.21. 발포는 시위대가 장갑차 대형버스 등을 지그재그로 몰며 공수대열 가운데로 돌진하여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중상을 입는 과정에서 장교들이 자위적 목적에서 발포한 것이다. 이러한 사격은 자위적인 성격의 것이었지, 고소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명령권자의 조직적인 발포명령에 의한 것도 아니었고, 광주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내기 위해 기획한 사격은 아니었다고 판단된다.  

2. 공수부대 지휘권의 2원화 여부  

광주의 주장: 진압부ㅡ대에 대한 지휘는 계엄사령관-2군사령관-정교사령관-31사단장에 이르는 공식적인 지휘계통을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전두환-정호영으로 구성되는 검은 세력에 의해 지휘되었다.  

수사결과: 전북 금마 주둔의 7공수를 전남대 등 3곳에 배치한 것은 육본이 5월 17일 자정, 전국 92개 대학에 계엄군을 배치하는 전국적 조치의 일환이었고, 광주 시위대 진압에 7공수가 투입된 것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광주에서만 시위가 벌어졌고, 경찰이 능력의 한계로 계엄군의 투입을 강력히 요청하는 상황에서 비롯되었고, 이후의 지휘는 정상적인 군 지휘계통을 따라 이루어졌다.  

3. 군이 무기피탈을 고의로 방치했다  

광주의 주장: 계엄군은 학살만행을 사전에 기획했다. 그 기획에 따라 시민들이 무기를 탈취하도록 유도하여 광주시민들을 ‘총기를 든 폭도’로 형상화하고, 그것을 빌미로 대량학살을 실천했다.  

수사결과: 광주시민에 의한 무기탈취는 5.19. 15:15경 기독교방송국에서 이루어졌다. 시위대가 방송국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31사단 병력으로부터 M16소총 1정을 탈취했다. 5.20. 23:00경 광주세무서를 방화하는 과정에서 지하실 무기고에서 카빈총 17정을 탈취하고, 5.21.13:00경 광산 하남 파출소에서 키빈총 9정이 탈취되는 등 이후 본격적인 무기탈취가 이어졌다.

그러나 군은 그 이전에 두 차례에 걸쳐 예비군 무기고에 있는 소총과 실탄을 회수하여 군부대에 보관하는 등 무기탈취를 예방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시위대의 무기탈취 속도가 원체 빠르고 계엄군은 시외곽으로 철수할 때까지 병력운용을 여유롭게 할 수 없고, 유린당하는 것을 피하기에 급급해 했다. 이러한 상태에서 군이 의도를 가지고 무기탈취를 방치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4. 헬기 기총 소사 여부  

광주의 주장: 광주 일부에서 헬기의 공중사격으로 인해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였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조비오 신부, 이광영 승려, 아놀드 피터슨 목사 등이 헬기기총 소사를 목격하였다. 

수사결과: 육군 항공단 근무자들은 대량살상을 유발하는 기총소사를 결코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군 기록을 보아도 5.21. 당시 2군사령부가 전교사에 수송용 헬기 UH-1H 10대, 코브라 무장헬기(AH-1J) 4대를 지원하고, 사태기간 중 헬기가 총 48시간 무력시위를 하였다는 기록 이외에 다른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다.  

목격자 이광영 승려는 5.21. 14:00경 헬기사격으로 15-16세의 여학생이 어깨부위를 피격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그를 적십자 병원으로 후송했다 진술한다. 병원기록을 확인하였지만 그런 기록은 없었다. 조비오신부가 헬기 피격자로 지명한 홍란은 헬기가 아니라 옥상에 있던 계엄군의 소총에 맞았다고 진술한다.

아놀드 신부는 헬기에서 불을 뿜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가 본 불빛은 충돌방지용 불빛이었다. 그와 헬기 기총소사를 목격했다는 사람들은 다 누구로부터 전해들었다는 말이었다. 모든 병원기록을 검토해 보아도 헬기에 의한 피해자는 찾을 수 없었다. 광주에서 사망한 민간인 165명 중 헬기총상은 찾을 수 없었다.  

        <검찰 보고서 기록 그대로> 

O 광주에서 무장헬기의 공중사격으로 많은 인명피해가 야기되었다는 주장이 일부에서 제기되었고, 조비오 신부, 이광영 승려, 아놀드 피터슨 목사 등이 헬기 기총 소사를 목격하였다고 주장하였음.  

O 이에 대하여 당시 육군항공단 근무 관계자들은 헬기 기총 사격은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야기하는 것으로 그러한 사격을 실시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였으며, 군 관계 자료 상으로는 5.21. 2군 사령부가 전교사에 수송용 헬기인 UH-1H 10대, 무장헬기 AH-1J(코브라) 4대를 지원하고 , 사태 기간 중 헬기가 총 48시간 동안 무력시위를 하였다는 기재 외에, 실제 공중사격 실시 여부에 대하여는 아무런 기재를 발견할 수 없었음.  

O 먼저 목격자들의 진술을 살펴보면  

- 위 이광영은 5.21.14:00 경 헬기사격으로 15-6세의 여학생이 어깨부위를 피격 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그를 적십자 병원으로 후송하였다고 진술하였으나, 적십 자병원의 당시 진료기록부와 응급실 관계자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그 당시 헬기사격 피해자가 해원하였음을 확인할 수 없었고,  

- 조비오 신부가 5.27. 헬기사격의 피해자라고 지목한 ‘홍란’은 검찰 조사에서 부근 건물 옥상에 있던 계엄군의 소총사격에 의하여 다쳤다고 진술하였으며,  

-정락평은 5.21.24:00경 광주경찰서 상공에서 기종 미상의 헬기가 기관총 사격하는 것을 목격하였으며, 부근 진주 다방의 종업원이 옥상에서 헬기기 쏜 기관총을 맞고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하였으나, 진주다방 종업원인 심동선(남, 30세)에 대한 검사조서에 의하면 사인이 M16소총에 의한 관통총상(사입구 1X1cm)이고, 당시 빌딩 옥상에 있던 공수부대원의 사격에 의한 피격이라는 취지의 증언(광주오월항쟁사료전집 714쪽)도 있으며,  

- 아놀드 피터슨 목사는 헬기가 선회하고 상공에서 총소리가 들려 헬기에서 기총 사격을 한 것으로 믿고 있으나, 헬기 사격 자체를 목격하지는 않았다는 것이고, 동인이 사격 장면을 촬영한 것으로 검찰에 제출한 사진상의 헬기 하단 불빛은 기관총 사격시 발생되는 섬광이 아니라 헬기에 장착된 충돌방지등의 불빛임이 확인되었고,  

- 그 밖의 목격자들도 막연하게 헬기에서 사격하는 것을 보았다는 것일 뿐, 달리 구체적으로 피해사실을 진술하지 못하고 있는 바,  

- 광주시내 적십자병원, 기독병원, 전남대 병원의 각 당시 진료기록부와 응급실 관계자들의 진술을 검토해 보아도 그 당시 각 병원에서 헬기 총격에 의한 피해자가 래원하였거나, 입원 치료를 받은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고, 광주시의 관련 사망자 165명에 대한 광주지방검찰청 이체 검사기록에서도 특별히 헬기 기총 사격에 의한 사인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근거를 발견할 수 없었음.  

O 또한 AH-1J 헬기 장착 무기인 토우 미사일, 2.75인치 로켓, 20미리 발칸포(분당 750발 발사)나, 500MD 헬기의 장착무기인 2.75인치의 로켓, 7.62미리 6열 기관총(분당 2,000-4,000발 발사)에 의한 표적사격의 경우 나타나는 대규모 인명피해와 뚜렷한 피탄흔적, 파편 등이 확인되지 않았고,  

O 전교사 교훈집의 ‘유류 및 탄약의 높은 소모율’이라는 기재는, 교훈집 작성시 헬기사용의 일반적 교리상의 문제를 육군 항공운용교범에서 그대로 인용하여 적시해 놓은 것이고, 실체 다른 사례에 비해 광주지역에서 유류나 탄약을 많이 소모했다는 것이 아님 점 등에 비추어 헬기장착 무기에 의한 사격으로 인명피해를 야기한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음. 

5. 대검 및 화염방사기 사용 여부  

광주주장: 대검을 총에 장착하고 마구 찔렀다. 화염방사기를 마구 사용했다.  

수사결과: 착검상태에서 시위를 진압한 일부 부대원이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기에 그 가능성은 인정이 된다. 하지만 화염방사기를 사용했다는 근거는 없다.  

6. 시외곽에서의 대규모 피해 여부  

광주주장: 계엄군이 광주에서 철수한 이후 광주에 이르는 수많은 도로와 마을에서 계엄군이 마구 학살했다.  

수사결과: 시외곽 지역에서 광주의 시위가 타지역간으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계엄군에 의한 소규모 피해들은 있었지만 대량 살상은 없었다.  

7. 사망자 수 

광주주장: 2,000명 이상이 살해되어 생매장되었다.   

수사결과: 모든 기록을 종합한 결과 5.18관련 광주에서의 사망자 수는 군인 23, 경찰 4, 민간인 166명이다. 그 이상은 발견할 수 없었다. 

                                                 결 론  

5월 21일의 상황기록을 보면 5월 21일, 13:00시부터 시위대는 엄청난 분량의 소화기를 휴대하고 사격들을 하였고, 오후 2-3시 경에는 건물 옥상들에 기관총을 거치하고 사격을 가했다. 15-16시 경, 20사단 61영대장이 11공수와 도청방어 임무를 교대하기 위해 UH-1H 헬기를 타고 고공 정찰을 나갔다가 폭도로부터 6발의 총격을 받았고, 선무방송을 하던 또 다른 헬기 UH-1H 가 또 다른 6발의 총격을 받고 긴급히 귀환했다. 이와 같이 높이 떠다니는 헬기에도 사격이 가해지는 판에, 헬기 한 대가 10층짜리 전일빌딩의 7,8.9.10층에 정지하여 소총을 사무실 바닥, 천정, 벽에 마구 쏘았다는 상상을 다른 기관도 아닌 과학수사의 최고봉을 자랑하는 국과수가 내놓았고, 수많은 언론들이 이에 춤을 추면서 5.18의 성역을 재건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문재인, 이 사람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라 적화통일에 빠져 있고, 5,18 호위에 경도된 지극히 비정상적인 사람이다.

지만원 박사 j-m-y82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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