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14)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그리스어로 두 개의 강 사이에 끼어있는 땅이라는 뜻임) 문명(文明, civilization)(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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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14)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그리스어로 두 개의 강 사이에 끼어있는 땅이라는 뜻임) 문명(文明, civilization)(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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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빈 교수의 ‘빛의 환타지아’]

메소포타미아문명의 출현과 수메르문명(Sumerian civilization)

농사가 가장 먼저 시작된 서아시아에는 터키의 아르메니아(Armenia) 고원에서 시작되는 티그리스(Tigris)강과 유프라테스(Euphrates)강이 흐르는데 그 두 강 사이 하류에 펼쳐진 메소포타미아 땅에서 가장 먼저 도시문명이 탄생했다. 이 지역은 본래 갈대만 무성한 진흙 밭이었으며 처음에 사람들은 메소포타미아 서쪽의 구릉지대에서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다가 인구가 늘고 기후가 바뀌자 지금으로부터 약 7,000년전 평야지대로 내려왔다. 그러나 평야는 저지대라 강이 범람할 위험이 있고 비도 거의 내리지 않아 농사짓기에 적합한 땅이 아니었는데 이들은 수로(水路, waterway)를 파서 강물을 끌어들이는 관개(灌漑, irrigation)공사를 함으로서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였다. 이들은 또 가래를 개량하여 소 두 마리가 끌면서 밭을 갈도록 하였고 쟁기위에 용기를 달아 씨를 뿌렸는데 수확이 날로 증가하자 사람들도 점점 증가하여 곳곳에 취락이 생겼으며 취락은 마을로 그리고 도시로 계속 발전하였다. 그리고 도시 내에는 풍요의 신을 모시는 신전(神殿, temple)이 건설되기 시작하였는데 이 지역에는 석재가 부족했기 때문에 햇볕에 말린 벽돌을 쌓아올려 건설하였다. 그런데 햇볕에 말린 벽돌은 물에 약해서 나중에는 벽돌을 구워 강도를 높였으나 연료가 넉넉지 못하여 불에 구운 벽돌은 신전과 같은 주요 건축물에만 사용하였다. 처음에는 제단(祭壇, altar)과 제상(祭床)뿐인 작은 신전들이 건설되었으나 도시가 커짐에 따라 신전도 점점 더 크고 호화로워졌으며 모시는 신들은 도시마다 달랐다.

▲ 문명의 요람 ⓒ뉴스타운

지금으로부터 약 5,500년 전 즉, 기원전(B.C.) 3500년 경 이 지역에 우르(Ur), 에리두(Eridu), 우루크(Uruk), 라가시(Lagash), 니푸르(Nippur) 등과 같은 인구 3만 명 정도의 수메르(Sumer)인 도시국가(都市國家, city-state)들이 탄생했다. 도시는 성벽으로 둘러싸이고 도시계획(都市計劃, city planning)에 따라 왕궁(王宮, palace), 도로, 광장과 여러 개의 신전 등이 건설되었으며 도시 중심부에는 그 도시의 수호신을 모시는 주신전(主神殿, main temple)과 함께 지구라트(ziggurat)라고 하는 건축물이 세워졌다. 지구라트는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피라미드 형태의, 높이가 수십m에 달하는 탑인데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정상에는 사당(祠堂, shrine)이 있었다. 신전은 종교의식의 장소일 뿐 아니라 정치, 경제, 외교의 중심 역할도 했으며 그 주위에는 재판소, 학교, 도서관, 공방(工房, workshop) 등 각종 시설들이 있었다. 각 도시에는 왕이 신의 대리인으로 존재하고 왕의 주위에는 신관(神官, hierarch)이 있었으며 그 아래 관료(官僚, bureaucracy)나 군인(軍人, soldier), 상인(商人, merchant), 기술자(技術者, technician), 농민(農民, peasant) 등의 시민계층(市民階層, citizens)이 형성되었고 최하층에 노예(奴隸, slave)가 된 전쟁포로들이 있었다. 이 지역에 남아도는 밀을 저장하였다가 다른 곳에서 오는 여러 가지 새로운 물건들과 교환하는 상인이라는 새로운 직업이 등장하였고 유목민(遊牧民, nomads)들도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이로부터 인류 최초의 수메르문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 지구라트 ⓒDawnrazor
▲ 지구라트가 부분적으로 복원된 우르 유적지 ⓒLasse Jensen

도시국가들이 건설되기 시작한 기원전 3500년부터 기원전 3100년까지는 가장 먼저 등장한 도시 중의 하나인 우루크를 중심으로 번영하였기 때문에 이 시기를 우루크기(期)라고 하며 이 도시에서 문자도 발명되었다. 처음에는 그림문자 형태였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쐐기모양의 설형문자(楔形文字, cuneiform script)로 발전하였는데 점토판 위에 갈대로 만든 붓으로 간단히 쓸 수 있었으며 기원전 2500년경에는 수메르의 다른 도시들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우리가 아직도 시간에 사용하고 있는 60진법을 발명하였으며 면적을 구하는데 필요한 제곱과 제곱근, 부피를 측정하는데 필요한 세제곱과 세제곱근의 개념도 생각해 냈다. 문자의 사용과 함께 서기(書記, clerk)라는 새로운 인기 직업이 생겼으며 서기를 양성하기 위한 학교도 설립되었다. 설형문자는 처음에는 뜻글자(표의문자/表意文字, ideogram)에 가까웠으나 나중에는 소리글자(표음문자/表音文字, phonetics)로 정리되어 다른 언어도 표기할 수 있었으므로 기원전 13세기경에는 오리엔트(Orient: 인도의 인더스강 서쪽에서 지중해 연안까지의 이란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팔레스타인 ·아르메니아 ·소아시아 및 아라비아와 이집트를 포함한 지방을 가리키나 유럽과 미국에서는 지중해의 동쪽에 있는 여러 나라의 의미로 특히 동부 아시아(동양)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음) 전역에서 사용되었다.

▲ 설형문자 점토판 ⓒ뉴스타운

수메르 인들은 도시국가 초기부터 이미 물레(녹로/轆轤, a potter´s wheel)를 사용하여 토기를 제작하였는데 처음에는 무늬가 없었으나 나중에는 선과 기하학적 무늬를 새기고 색채도 입히게 되었으며 크고 작은 질 좋은 토기들을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토기 역시 우루크제품이 가장 우수하여 다른 도시들로 전파되었으며 그 외의 다른 여러 가지 제품들도 많이 생산되었고 이 시기에 바퀴(wheel)가 달린 수레도 발명되는 등 수송기술도 비약적으로 발전되었다. 이들은 또 보리를 이용하여 30종류 이상의 맥주(麥酒, beer)를 만들었으며 대추야자로는 술과 식초, 당밀 등을 만들었다.

▲ 물레 ⓒbanglapedia_search_com_bd
▲ 바퀴 ⓒ뉴스타운

이 지역에서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세계에서 가장 먼저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 the Bronze Age)가 시작되어 청동(구리에 주석을 섞은 것으로 구리보다 단단하나 가공하기가 용이함)제조법은 물론 각종 금속가공기술이 발달했으며 각 도시에는 금속세공사나 대장장이 등의 기술자집단이 형성되었다. 그들은 그때부터 이미 납으로 거푸집을 만들고 여기에 녹은 쇳물을 붓는 방법으로 각종 무기나 도구와 특히 여러 가지 아름다운 장신구들을 만들어 수출하였다. 자원이 별로 없는 수메르 도시들은 금속, 목재, 석재 등을 수입하고 이들을 가공하여 만든 장식품 등의 상품을 식량, 가축, 작물, 토기 등과 함께 수출하였는데 교역국은 인접지역뿐 아니라 멀리 이집트나 아프가니스탄까지 포함되었다. 수송수단으로는 육상에서는 주로 나귀가 이용되었고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이나 주변의 운하를 이용한 수상수송도 활발했다. 강에서는 골풀(등심초/燈心草, rush)로 짜서 만든 작은 배나 굵은 갈대줄기를 엮은 뗏목을 이용하였으며 바다를 건널 때는 대형 범선(帆船, sailing ship)도 사용했다.

▲ 청동무기 ⓒDave King ,Dorling Kindersley, The Museum of London
▲ 청동 장식품 ⓒDave King ,Dorling Kindersley, The Museum of London

이와 같이 약 1,500년간이나 번영을 구가하던 수메르문명에 기원전 2000년경부터 이상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안락한 도시생활에 물든 수메르 인들이 농지관리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농토가 염해(鹽害, salt damage)를 입어 곡물 생산량이 보리는 3분의 2, 밀은 3분의 1로 줄어들게 되었으며 이들이 같이 경작하던 콩류, 참깨, 대추야자나 양파, 오이 등도 거의 재배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비교적 염분에 강한 보리와 대추야자만 재배하게 되었으나 나중에는 보리조차 견디지 못하여 대추야자만 남게 되었다. 이와 같이 농업생산이 위축된 데다가 왕이나 신관들의 부패마저 만연하여 수메르의 도시들은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이들은 과거의 영광을 돌이켜보고자 수메르왕조의 역사나 영웅 이야기인 ‘길가메시(Gilgamesh: 고대 우루크의 왕으로서 괴력을 가진 거인) 서사시(敍事詩, epic)’를 쓰기도 하였는데 여기에는 노아의 홍수의 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홍수에 대한 기록도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홍수가 자주 일어나고 경제마저 기울자 교역을 통하여 평화롭게 공존하던 도시들은 서로 다른 도시들을 공격하게 되었다.

▲ 길가메시 ⓒboe_qacps_k12_md_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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