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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의 모든 것

기사승인 2017.06.12  09: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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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주도자 광주운동권이나 학생들이 아닌 외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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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타운

박정희 암살, 누가 사주했을까?

소설가 김진명, 1993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썼다. 이어서 2010년에 ‘10.26’이라는 소설을 또 썼다. 그는 두 책을 통해 김재규를 시켜 박정희를 시해케 한 존재가 미국이라는 주장을 폈다. 미국을 암살배후로 집요하게 반복해서 주장하는 것을 보면 그는 일단 반미주의자인 것으로 분류될 수 있다. 미국이 김재규를 사주해 박정희를 죽였다는 결론으로 유도하는 스토리는 모두 픽션이다. 미국이 사주했을 것이라는 정황증거들도 없다. 유일한 동기는 박정희가 미국의 뜻을 거스르면서 몰래 핵을 개발하려 했다는 것이다. 만일 김재규를 누군가가 배후에서 사주했다면 그것은 김일성일 것이다.

5.18의 절대적 전제조건은 박정희 암살

김일성은 대담하게도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살인집단을 청와대로 보내 박정희의 목을 따오라 보냈고, 1974년 8월 15일 김대중이 일본에 창설한 한민통 소속의 문세광을 보내 박정희를 향해 총을 쏘게 했다. 5.18은 북한이 만능의 맥가이버로 훈련된 특수군 600명과 공작조 및 엑스트라 조로 또 다른 600여명을 보낸 대규모 게릴라 모략전쟁었다. 이런 대규모의 야심 찬 게릴라전은 박정희를 살해하지 않고서는 기획할 수 없는 성질의 작전이었다.

10.26 암살과 북한의 10.27 폭풍명령 제5호

북한은 10.26작전이 성공할 것이라는 예단이라도 한 것 같이 움직였다. 1979.10.27. 폭풍5호를 발령했고, 11월초 폭풍작전명령이 특수부대에 떨어졌다. 11월 중순부터 북한특수군이 소규모 단위로 남한에 축차 침투했다. 잠수함을 이용해 해서는 10여명 단위로 침투했고, 도보 수단으로는 태백산-문경-지리산맥 경로를 타고 침투했다. 문경새재가 이들을 안내하는 간첩들의 소굴이라는 것이 여러 정황들로 드러나 있다. 5.18 때 북한군에 길을 안내한 간첩 손성모가 여기에서 붙잡혀 18년 동안 옥살이를 하다가 김대중에 의해 북송돼 북한의 영웅이 되었다. 실제로 북한 특수군 신분으로 광주에 와서 작전을 수행했던 탈북자 가명 김명국 부대 50명도 문경새재에서 단지 그들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나물캐던 처녀를 살해해 암매장했다고 증언한다.

5.18 훨씬 이전에 전남해안지역(목포 일대)에 접안 시설 교두보로 확보

북한군은 5.18 수개월 전부터 광주일원과 전남일원 숙박시설을 선점하고 현지정찰을 기초로 시가전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전남 일정지역(목포)의 해안방위를 공작수단으로 무력화시켜 대형선박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에 대한 정황증거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전남해안지대 일부를 대량침투의 교두보로 확보한 북한은 김일성 로열패일리 8명을 비롯한 남녀 노인들과 어린이들까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게 준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5.17과 예비검속

10.26 직후 김일성은 간첩에 내리는 비밀교시를 통해 남파간첩들에 전민봉기”(전국봉기)를 일으키라 명령했다. 이에 적극 호응한 사람은 김대중이었다. 그가 진두지휘하고 간첩이 배후 조종하는 학생시위는 1980년 5월 4일 서울대로부터 시작되었고, 매일 기하급수의 규모로 확대됐다. 5월 15일은 서울역에 10만 학생이 모여 버스로 경찰관들을 깔아죽였다. 북한 문헌들을 보니 5월의 전국 시위는 간첩들의 지휘와 작전개념에 따라 수행됐다. 최규하 임시정부가 패닉상태에 빠졌고, 국민들이 불안에 떨었다. 그러나 유독 김대중은 이에 고무되어 5월 16일, 감히 국가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다. 5월 19일까지 최규하 내각을 해체하고 계엄령(1979.10.27 새벽에 발동)을 철폐하지 않으면 5월 22일 전국에 걸쳐 서울역과 같은 시위를 일으키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김대중이 광주사태를 통해 국가를 전복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갖지 않았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성격의 선전포고였다.

5월 17일, 군에 비상이 걸렸다. 전국에서 지휘관들이 헬기를 타고 올라와 이른바 “전국지휘관회의”를 했다. 계엄령을 더 한층 강화하고 시위 배후자를 즉시 엄단해야 한다는 결론을 냈고, 국방장관은 이를 대통령에 보고했다. 그날 밤 늦게 중앙청에서 최규하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했고, 계엄령 전국확대 방안이 만장일치로 가결됐다. 이때로부터 전국 주요 거점들에 계엄군이 배치됐고, 운동권과 학생 주도자들을 찾아내기 위한 예비검속이 보안사-경찰 주도로 살벌하게 진행됐다.

광주폭동을 주도한 시민군 600명, 5.18일지에는 서울서 온 대학생으로 기록

학생들이나 개념 있는 젊은 사람들은 모두 오해로 인한 피해를 입을까 겁을 먹고 거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5월 18일에 거리를 나다니는 학생은 전국적으로 없었다. 그런데! 광주에는 어떻게 해서 학생시위대가 600명씩이나 나서서 광주시가를 주름잡게 되었는가? 기록들을 보나 당시 상황을 보나 광주에는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나서지 않았고, 나설 수도 없었다. 이들 “대학생 600명”은 5월 18일 광주공원에 300명, 유동삼거리에 300명 씩 관측됐고, 5월 21일까지의 상황일지에는 300명 단위로 움직이는 학생시위대가 수도 없이 관찰됐다. 유명한 동아일보 기자 김영택은 이들 600명의 날랜 시위대를 근접 관찰했다.

그는 이들 600명이 무기반납을 반대하고 행동이 민첩했으며 시민들에게 계속 투쟁할 것을 종용하고 다녔다며, 이들 600명은 학생이 아니라 전두환이 광주시민을 모략하기 위해 조직해 투입한 집단이라고 확신하는 내용으로 검찰 진술도 했고, 박사논문도 썼다. 5.18기념재단 홈페이지 ‘타임라인’(5.18 일지)에는 5월 22일 15:08분, “서울에서 온 대학생 500명 환영대해 거행”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들 500명의 서울서 온 대학생은 분명 광주 출신 대학생이 아니었던 것이다. 5.18단체 스스로 광주에서 설치던 대학생처럼 보이는 날랜 사람들이 광주 출신 대학생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해준 것이다.

우리가 가장 눈여겨 보아야할 현상은 3개다. 첫째는 폭동이 시작되는 첫 순간을 누가 촉발했는가에 대한 것이고 둘째 5월 21일의 고난도 작전을 과연 광주의 개념 없는 10-20대가 사전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냐에 대한 것이고, 셋째 5.18 최고의 유공자로 5.18을 대표하는 이른바 자칭 “5.18의 영웅들”은 모두 5월 25일부터 한 사람씩 도청에 들어간 사람들이었고, 이들은 도청에서 서로를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다.

(1) 폭동이 시작된 5월 18일 오전 9시

5.18은 광주 학생들이 시작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북한군이 시작했다. 5.18을 북한군이 주도했다는 사실을 굳게 믿는 사람들도 아직은 5.18 진실에 대한 독서와 연구가 부족하여 “5.18은 처음에 광주학생과 시민들이 일으킨 것이었는데 중간에 북한군이 개입하여 그 순수성이 오염됐다”는 취지의 내용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이는 엄청난 오해다. 전국을 살얼음판으로 동결시킨 5.17 계엄확대와 전국 경찰이 나서서 실시하는 “예비검속”을 무시하고 거리에 나설 수 있는 학생들이나 국민은 바보가 아닌 이상 전국에 없었다.

그런데 5월 18일 아침 9시, 대학생 200여명(증2, 다른 자료에는 250명)이 전남대학에 진주한 350명 정도의 공수부대(제33대대, 대대장 호남출신 권승만)를 감히 찾아가 도서관에 가겠다는 이유로 시비를 건 다음 공수부대 대원들에 가방에 숨겨온 돌을 던져 무려 7명의 공수부대 요원들에게 부상을 입히고 금남로 쪽으로 달아났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고서는 상상이 가지 않는 기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들은 달아나면서 파출소들을 파괴하고 경찰의 가스차를 불태워 연기를 내서 사람들을 모은 후, 영호남 갈등을 부추기는 내용의 준비된 유언비어 보따리를 풀었다.

“전두환이 화려한 휴가라는 작전명으로 전라도 사람들 씨를 말리러 왔다.” “경상도 군인들만 뽑아 전라도 사람 70%를 죽여도 좋다는 전두환의 명령을 받고 왔다” “공수부대원을 이틀 동안 굶기고 빼갈에 환각제를 타 먹여 칼로 호박을 찌르듯 마구 찌른다” “여성을 알몸으로 벗기고 대검으로 유발을 벗겨 매달아 놓았다” “김대중을 죽이고 전라도 사람을 싹쓸이하고 있다”

이 유언비어들이 삽시간에 퍼지자 광주는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다. 이런 모략작전은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공산당의 수법이다.

(2) 5월 21일 : 북한군에 의한 세계 최정상급 특공작전 수행

북한군 600명이 극비 정보에 속하는 제20사단 이동계획을 미리 알아가지고 광주톨게이트 부근에 매복해 있다가 이동 중인 20사단 차량부대 습격하여 사단장용 지프차 등 14대 지프차를 탈취하여 아시아 자동차공장으로 갔다. 아시아자동차공장은 군용 장갑차와 군용 트럭을 제조하는 군납업체다. 군납업체이기 때문에 경비가 매우 삼엄했다. 북한군이 사단장용 지프차등 14대의 지휘용 지프차를 탈취해 가지고 군납업체에 간 이유는 순순히 경비를 풀고 요구에 복종하라는 무언의 강력한 메시지를 주기해서였을 것이다.

이들 600명은 장갑차4대. 군용트럭374대 탈취해 전남 17개 시-군에 소재한 44개 무기고로 직행했고, 4시간 만에 5,403정의 총기를 탈취했다. 8톤 트럭 분의 TNT를 화순탄광에서 탈취해 도청지하실에 운반해놓고, 2,100발의 폭탄으로 조립해 이 광주시를 히로시마처럼 날리겠다고 계엄군을 협박했다. 그리고 광주공원 등에서 광주시민들에 무기사용방법을 교육했다. 그후 공수부대는 대량살육 될 순간을 가까스로 모면하면서 그리도 고수하려던 전남도청을 폭도들에 내주고 시 외곽으로 후퇴했다. 시 외곽으로 철수하는 과정에서 북한군과 치열한 총격전을 치뤘다. 이들 북한군은 광주교도소를 6회씩이나 공격했다. 5월 21일에 취해진 이 엄청난 특공작전은 세계 정상급에 속하는 불가사이에 속하는 것이며,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되지 않고서는 수행할 수 없는 작전이며 동시에 대한민국의 그 어느 군부대도 적지에 기서 수행할 수 없는 고난도 작전이다. 하물며 택시운전사, 철물직공, 다방종업원, 껌팔이, 구두닦이, 양아치, 목공 구두공 등 10-20대의 흩어진 부나비들이 어찌 이런 일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이를 북한군이 아니라 하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는 꼴이 된 것이다.

(3) 5.18 최고의 유공자들은 5월 18-24까지 도망다니던 비겁자들

 * 정상용(무기징역)의 증언 

정상용은 당시 30세의 회사원이었고, 군법회의 제1심에서 무기형을 언도받았다. 김대중 시절에는 평민당 국회의원, 그는 광주민주화운동 자료총서 17권 65쪽 ‘정상용의 5.18회고’에서 아래와 같이 밝혔다. 5월 26일 편성된 기동타격대가 10대의 학생들과 20대의 품팔이 노동자들이었다는 것이다.

“5.18의 기동타격대 구성원은 그 80%가 17살에서 22살 사이의 청년이었고, 대부분이 학생이 아닌 도시근로자, 노동자, 점원, 실직자, 구두닦이, 품팔이, 식당 종업원 등 소외받고 억눌려왔던 기층민중이며 이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싸웠다.”

5.18 항쟁자료집 제1권에서 정상용은 또 이런 증언을 했다.

“21일 누군가가 도청을 탈환했다. 이걸 장악한 사람들이 있을 거 아닌가? 도청을 장악한 사람들은 따로 있고, 우리는 사태를 수습하려고 도청으로 간 거다. 장악한 사람들은 위엄 있는 높은 관료 정도로 보이는 사람들인데 그들이 우리에게 ‘곧 계엄군이 들어올 것이니 학생들은 나가라’고 말했다. 23일의 이런 모습을 본 위엄 있는 ‘국장급 공무원들’이 24일부터는 보이지 않았다” 

같은 책(5.18 항쟁자료집)에서 박남선(사형선고)은 이런 증언을 했다.

“무기를 탈취한 사람들은 광주가 통제해서 보낸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간 사람들이다”

* 허규정(무기징역)의 증언

“나는 5월 26일 출범한 투쟁위원회의 내무위원장을 맡았다. 우연히 지나다가 공수부대 요원들이 젊은 학생들을 따라다니며 때리는 것을 보고 분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가 나도 공수부대에 이리저리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됐다. 운동권에 속했던 것도 아니고 순전히 개인지격으로 휩쓸렸다. 시민들 하고 이리저리 밀려다니기만 했다. 그 시위는 누가 주도하는 사람도 없고 리더도 없었다. 경찰도 공수부대를 욕하고 우리더러는 들어가라며 보호해주려 했다.”

“종교계 지도자, 재야인사만 들어가고 학생들은 들어오지 말고 나가라 했다. 계엄군이 곧 들어온다 하니까 누구든 책임감 없이 나와 버렸다. 종교지도자들도 나갔고, 일반 시민들도 다 나갔다. 도망 나온 거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멀리 안 가고, 근처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그런데 일부 시민들이 도청에 들어갔다는 말이 들렸다. 나도 다시 도청에 갔다. 갔더니 시국수습대책위원회가 구성돼 있었다. 높아 보이는 사람들은 안 보였다.”

“어른들은 시국수습대책위원회, 젊은 사람들은 학생수습위원회, 어른 청년이 각각 위원회 만들어 가지고 서로 말이 다르고 통제가 안 되었다. 조직이 움직이지 않고 엉망이었다. 그런데 윤석루가 나이도 굉장히 어린데 기백이 있어서 기동타격대를 장악했다. 윤석루는 학생도 아니었다. 특별한 방법은 안 나오고 맨날 회의만 했다. 운동권 간부들은 모두 다 예비검속으로 미리 잡혀 가버렸고,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개념 없는 사람들뿐이었다.”

“23일의 이런 모습을 본 위엄 있는 ‘국장급 공무원들’이 24일부터는 보이지 않았다. 남는 사람들은 오직 종교지도자들, 교수들 그리고 젊은 사람들뿐이었다. 이들은 모두 사태를 여기서 끝내고 시국을 수습하지고 했다. 나도 멋모르고 참여해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내무위원장이 된 거다.”

* 박남선(사형선고)의 증언

“나의 집이 31사단 앞이었다. 5월 18일, 전대 앞 데모를 봤다. 근무하는데 둘째 동생한테서 또 다른 동생이 계엄군에 맞았다는 전화가 왔다. 전대 병원에 가니 동생이 다리가 부러져 있었다. 친구들과 조를 짜서 낙오한 계엄군을 돌과 각목으로 패기 시작했다. 차에다 몽둥이를 실었다. 당시는 아스팔트 위에 돌멩이 보다 총이 더 나뒹굴었다. 내 통제 하에 있는 사람들이 가진 총 말고는 다 회수하도록 지시했다.”

“시민군은 모두 불루칼러들이었다, 식당종업원, 구두닦이 등 가장 밑바닥에서 사는 사람들이 가장 앞장섰다. 운동권들은 다 광주에서 도망갔다. 지식인들은 수습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얼굴 세울 궁리만 했다. 전남대? 5월 17일, 운동권 인물들 다 잡혀 갔다. 항쟁에 참여한 사람 거의 없다. 고등학생들, 총 들고 싸우겠다고 했는데 내가 26일 밤, 다 돌려보냈다. 무기를 탈취한 사람들은 광주가 통제해서 보낸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간 사람들이다.”

5.18 핵심 유공자들의 증언은 5.18을 광주운동권이나 학생들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외지인이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증명해 준다. 무기탈취를 주도한 사람들은 광주사람들이 아니었다. 5월 21일 오후까지 비무장으로 전남 각 곳에서 계엄군과 싸워 계엄군을 시외로 몰아낸 사람들은 광주사람들이 아니었다. 5월 18일부터 21일까지의 살벌한 전투를 지휘한 사람은 광주에 없다. 도청은 외지인이 장악했고, 무기도 외지인들이 털었다. 전남도청을 점령한 사람들은 5월 24일 도청을 떠났다. 그 후의 도청은 어린학생들, 어린 청년, 양아치 등 불과 얼마 안 되는 YWCA 사람들과 밥을 해주는 여성들의 집합소였고, 이 지역은 운동권도 아니고 대학생들도 아닌 강경한 성격의 뜨내기들이 25일 야밤부터 장악했다. 그리고 어린 뜨내기들이 감히 계엄군에 엄포를 놓다가 애꿎은 17명의 민간인 인명을 절단냈다.

당시의 국가는 5.18의 주범을 잡지 못했다. 당시 법원이 사형 및 무기 징역 등으로 처벌한 사람들은, ‘주로 5월 26일 새벽부터 도청을 점령하고 ‘항쟁지도부’라는 당치도 않은 이름으로 단지 강경발언들을 내 뱉은 이름 없고 주소 없는 꼬마들‘이었다. 이런 증언들인 것이다.

5.18 군법회의에서 중형을 받은 최고 유공자들

제1심에서 사형을 받은 사람들 : 정동년(37, 복학생), 배용수(34, 운전수), 박노정(28, 인쇄업), 박남선(26, 트럭운전수), 김종배(26,학생)  

무기징역 선고받은 사람들 : 윤석루(19, 구두공) 허규정(27, 학생) 정상용(30, 회사원) 하영열(31, 공원) 윤재근(28, 공원) 서만석(36, 상업) 홍남순(67, 변호사)

위에서 정동녕만 예비검속 대상으로 5월 17일 체포됐고, 나무지는 모두 5월 24일까지 각자도생으로 숨어 있다가 어늘렁 어슬렁 북한군이 버리고 간 도청에 들어간 자들이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북한군의 작전내용을 가로채 자기들의 업적이라며 국민을 속이고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다.

지만원 박사 j-m-y82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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