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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발포명령 내린 사람 찾았다

기사승인 2017.05.29  19: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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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시민 사살명령은 김정일이 내렸고, 이를 현장지휘한 사람은 리을설이었다

   
▲ 2015년 5월 18일, 광주에서 거행된 5.18 제35주년 기념행사에 등장한 김정일-김대중 세트 캐릭터 ⓒ뉴스타운

광주에서 발포명령을 내린 사람 대한민국에는 없다. 전일빌딩 10층 바닥-천장-벽에 난 165발의 탄흔은 5월 27일, 계엄군 11공수 특공대 30여명이 전일빌딩에 있는 폭도들을 제압하기 위해 들이닥쳤을 때 45명의 폭도들이 기관총 등을 난사하면서 악랄하게 저항했던 자국이다 거기에서 폭도 3명이 사살됐고, 계엄군 2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걸 가지고 헬기사격이라고 발광들을 한다, 무장 헬기가 쏘았다면 최소한 1분당 발사속도가 3,000-4,000발 하는 기관총으로 쏘아야 한다. 이것이 무장헬기의 발사속도이기 때문이다. 겨우 165발을 쏘자고 헬기가 동원됐다고 주장하니 군대에서 도망가기로 유명해서 지어진 별명, 하와이 18번지 전라도 인간들은 다 군대 가서 놀기만 했던가? 헬기가 창 밖에서 천장도 쏘고 방바닥도 쏘았다니 이자들에게 사고력이라는 게 도대체 있는 것인가?  

5.18 빨갱이들이 꾸준히 주장해 온 것은 5월 21일 오후 1시에 계엄군이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집단 발포를 했고, 그 발포명령은 전두환이 내렸다고 생떼를 썼다. 그러나 도청 앞 발포는 병사들이 자기 방어를 위해 발포한 제9번째의 발포였다. 첫 번째 발포는 5월 19일 오후 5시에 발생했다. 고립된 장갑차 위에 불타는 볏짚을 계속 올려놓자 열을 이기지 못한 소대장이 뚜껑(해치)을 열고 사격을 한 것이다.  

5월 21일 도청 앞 발포는 폭도들이 장갑차와 대형차량으로 집합해 있는 계엄군을 향해 돌진할 때 살기 위해 발사한 것이다. 죽음의 순간에 임하여 스스로 살기 위해 행한 제9번째 자위적 발포였던 것이다. 수천 명이 죽었다고 생떼를 쓰는 5월21일, 이날 사망한 광주인은 61명, 그런데 그 61명의 98%가 계엄군이 없는 먼 지역에서 발생했고, 계엄군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자상을 당하고 타박상을 당했다. 5월 21일 죽은 장소와 사망원인 현황자료를 놓고 따져보아라. 아니면 나와 함께 따져보자.  

광주시민을 비참한 모습으로 죽여놓고 그것을 계엄군의 소행으로 뒤집어씌우라는 명령은 김정일이 내렸다. 이는 영상분석, 북한자료, 수사기록에 의해 밝혀지기도 했지만 1998년, 황장엽과 김덕홍에 의해 증언되기도 했다(2013 월간조선 5월호 김용삼 전월간조선 편집장)  

광주시민 사살명령은 김정일이 내렸고, 이를 현장 지휘한 사람은 2성장군에 불과했던 보안사 전두환이 아니라 광주에 북한군 600명을 이끌고 내려와 폭동을 지휘했던 북한의 3성장군 리을설이었다. 어째서 전라도 인간들은 광주인들을 반드시 공수부대가 죽였다고 해야 직성이 풀리고, 북한군이 죽였다고 하면 길길이 날뛰는가? 바로 이런 행동이 전라도가 북한땅이라는 사실을 웅변하고도 남는 것이다, 2015년 5.18 제35주년 기념행사는 5.18이, 김정일과 김대중이 손을 잡고 횃불을 들고 일으킨 것이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거대한 조형물을 통해 명백하게 밝혔다.  

지만원 박사 j-m-y82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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