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정권이 퇴임을 1년도 안 남기고 저지른 '역사바로세우기'는 진정한 의미의 '역사바로세우기'가 아니라 단지 어제의 동지였던 전두환 노태우에 대한 정치보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것은 작년에 발간된 '노태우 자서전'에서 밝힌 대로 3당 합당을 해서 집권당 대표로 대통령에 출마한 김영삼이 노태우에게서 막대한 선거자금을 지원 받았음에도 김영삼은 자신만 혼자 깨끗한 척 하며 전두환 노태우를 부정부패자요 군사반란의 수괴로 재판정에 세웠다고 밝혔다.
이렇게 김영삼 정부는 1997년 두 전직대통령과 관련자를 처벌하고 5·18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이 와중에 언론에 도배된 내용이 '역사바로세우기'였으며 성공한 쿠데다를 처벌하는 이유를 자라나는 아이들과 후세를 위한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2002년 김대중 정권은 '5·18 민주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을 제정해서 5·18 희생자 및 관련자들은 명실 공히 5·18 민주화유공자로 인정 되었는데, 지금까지 그 숫자는 5천명이 넘었다. 김영삼의 역사바로세우기는 한마디로 모택동의 문화혁명과 같은 광풍(狂風)이었다. 소위 안방드라마에선 '모래시계' 열풍이 몰아 쳤고 영화계에선 '꽃잎'이란 영화로 시대의 양심 상실을 통절히 비판했다.
전두환 노태우의 군사 군테타는 처벌받아 마땅했고 부정부패에 대한 처벌은 당연한 역사의 귀결이었다. 문제는 이들의 기득권을 박탈하기 위해 5.18에 대한 '성역화' 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역사적 사실에 대한 면밀한 사전작업도 없이 소위 '카더라'란 광주시민들의 주장과 추측만으로 무장폭동을 일으킨 자들이 누구 도움을 받았는지, 북한특수군이 수 백 명이 침투했는데도 이들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뚜렷한 증거자료도 없이, 단지 감빵 한번 갔다 왔다는 기록만으로 거의 모두 '5.18 유공자'로 보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1980년 당시 연고대생 600명이 수행한 40여 곳의 무기고 탈취와 항쟁은 정규군인 공수부대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줄행랑을 칠 정도 였다. 이들 대학생이 북한특수군(광수)인지 밝혀낸 분이 바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미해군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지만원 박사인 것이다.
김영삼 전대통령은 퇴임하기 바로 전에 국가를 IMF 외환위기 속에 몰아 놓았고, 한보 비리로 자신의 차남 김현철이 법정구속 되기까지 했다. 20년이 다 되가는 시점에서 역사를 반추해 보면 나라 경제를 망쳐 먹은 김영삼은 용서가 돼도 5.18 역사를 거꾸로 기록한 것은 용서 받기 힘든 오명(汚名)과 진실왜곡의 서막이었다.
김영삼이 당시 역사바로세우기를 제대로만 했다면 김대중 노무현 같은 종북반역 정권은 탄생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남한 정부의 대량 현금 지원이 없었다면 북한은 핵무기 만들기도 불가능 했을 뿐더러, 오늘날 대한민국은 일본을 추월하는 선진국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김영삼이 한 역사바로세우기가 얼마나 독단적이고 감정적인 정치보복 수준인지 오늘날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잘못된 5.18 역사는 빨갱이들이 발호할 기회만 준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자라 나고 배우는 어린이들과 젊은이들 영혼과 양심(良心)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억측과 왜곡된 역사를 우리 자손들은 강제로 배워야 할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5.18 역사를 바로세우지 못한다면 5.18 진실을 알게 된 분노한 국민들이 정의수복(正義收復) 차원에서 저항권(抵抗權)을 행사하여 5.18 역사바로세우기 심판(審判)을 할 날이 조만간 도래 할 것이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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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이런 글이나 쓰고 다니는 거 보면 참으로 대단하시네요.
색깔 프레임에 빠져서 여전히 빨갱이 빨갱이 하고 다니다니
순진한건지 아님 멍청한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