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재판은 사실 오인, 사실 오인된 판결은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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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재판은 사실 오인, 사실 오인된 판결은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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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학생 시위대 600명이 광주시민이나 학생이 될 수 없는 이유들

5.18 재판은 1980-81년에 한 번 했고, 1996-97년에 또 한 번 했다. 그런데 이 두 개의 판결 모두가 사실을 오인해놓고 한 엉터리 재판이었다. 재판의 핵심이 되는 중요한 사실에 대해 사실 오인을 했다면 그 판결은 쓰레기다. 즉시 폐기하고 국가가 나서서 사실분석부터 먼저 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재판을 다시 해야 한다.  

5.18 사태의 성격을 재판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1) 사태의 핵심부분이 무엇인지 2) 그 핵심사태의 주동자가 누구인지를 철저하게 찾는 일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재판부는 2회에 걸쳐 직무를 방기했다.

5.18 사태의 핵심 부분

5월 21일이 10일 사태의 핵심이었다. 5월 21일 상황들을 자세히 읽고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대학생 시위대 300명은 20사단 지휘부 차량부대가 톨게이트를 08시에 통과한다는 극비에 속하는 정보를 알아가지고 몽둥이와 화염병을 소지한 채 매복해 있다가 사단장 지프차를 포함해 14대의 지프차를 털어가지고 군납업체인 아시아자동차 공장으로 달려가 공장 사람들에게 위세를 과시했다. 이정도 실력이니 잔말 말고 알아서 차들에 키를 꽂으라는 것이었다. 09시에는 또 다른 300명의 대학생들이 버스 5대를 타고 이들에 합류했습니다. 이 600명의 대학생들은 아직 군에 납품도 하지 않은 신형 장갑차 4대군용트럭 374대를 빼앗아 전라남도 17개 시-군에 대외비로 꼭꼭 숨어 있는 44개 무기고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오래 전부터 준비된 작전이었고, 세계 최고의 특공작전인 엔테베 작전보다 더 높은 고난도 작전이었다. 12시부터 불과 4시간 만에 전남지역 17개 시군에 꼭꼭 숨은 44개 무기고를 부수고 5,408정의 총기를 털었고, 다이너마이트를 도청에 가져다 2,100발의 폭탄으로 제조해 놓았다. 이것이 사태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 핵심작전 내용들이 수사기록에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는 데도 당시 판검사들은 이 도깨비 같은 작전을 광주 대학생들이 주도 했는지, 북한특수군이 주도 했는지에 대해 추적이 일체 없었다. 전두환 시대나 김영삼 시대나 다 5월 21일의 적전내용이 무엇인지 누가 했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사건 발생 35년이 지난 시점에서 필자가 음미해 보니 그들 600명은 절대로 광주의 개념 없는 부니비들이 아니었다. 이렇게 필자의 눈에는 보이는 북한군이 어째서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조사관들과 판검사들에게는 보이지 않았는가? 5월 21일 작전세력인 600명의 존재에 대해서는 전두환 시대에도 무시했고, 김영삼 시대에도 무시했다.  

             이들 학생 시위대 600명이 광주시민이나 학생이 될 수 없는 이유들  

1980년 5월 18일 새벽부터 전국은 계엄령 확대선포와 폭넓은 예비검속으로 인해 전국 그 어느 곳도 안전하지 못했다. 운동권일수록 숨을 곳 찾기에 혈안이 돼 있었다. 1980년 5월의 광주는 서울지역에 비해 시위가 활발하지 못했다. 광주의 학생운동권 지도자는 전남대 총학생회장인 박관현, 축산학과 학생회장인 윤한봉, 38세의 복학생 정동년, 5.18의 영웅이라는 윤상원 정도 였다. 그런데 박관현과 윤한봉은 5월 17일 밤부터 도망을 다니며 광주사태에 전혀 나타나지 않았고, 정동년은 5월 17일 자정에 체포됐고, 윤상원은 5월 21일까지도 숨어 있다가 5월 24일 오전까지 도청을 배타적으로 장악했건 북한 세력이 안개 같이 사라진 이후 어슬렁거리며 도청에 들어가 5월 25일과 26일, 학생수습위원회 대변인을 했다.  

무시무시한 계엄령의 선포로 당국에 조금이라도 의심을 받았던 모든 학생과 젊은이들은 모두 숨어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광주에서 만은 이렇게 고도로 훈련된 대학생들이 600명씩이나 존재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이에 대해 의심을 하지 않는 판검사들이 사실 오인을 주도한 것이다. 이 600명 작전은 신출귀몰하다는 이스라엘 특공대의 엔테베 작전보다 한 차원 더 높은 고난도의 작전이다. 그런데 이 나라의 검찰과 판사들은 이러한 고난도 작전을 광주의 대학생 600명이 수행한 것이라고 간주했다. 대한민국 검사들과 판사들이 북한의 침략작전을 숭고한 광주시민의 민주화운동이라고 단정한 것이다.  

5.18 사태가 종료 되었을 때 주동자들이라고 잡힌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주동자 328명 대부분이 5월 25일 이후 도청에 들어가 우쭐대다가 잡힌 10-20대 부나비들이다. 5.18이 민주화운동이라며 엄청난 포상금을 주는 마당에 5월 21일 참가자들은 씨도 없다. 주동자라고 잡힌 자들 중 대학생은 5월 25-27일 도청에서 자기들끼리 갑론을박 하던 자 두 사람뿐이다. 

결 론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5월 21일의 번개작전을 누가 수행한 것인지에 대한 조사 없이 무조건 광주학생 시민들이 이룩한 민주화 성과 라고 단정해 버린 재판부는 두고 두고 얼굴을 들지 못할 것이다. 여기까지는 광수가 나오기 전까지의 일이다. 광수가 나오기 전에도 상황일지만 잘 분석하면 600명은 절대로 광주사람들일 수 없었다. 이렇게 엉터리 같은 재판 결과를 놓고 무조건 1997년의 재판 결과를 존중하라 강요하고 재판 결과에 어긋나면 범죄라 하는 이 국가는 참으로 나쁜 국가다. 

우리 국민은 이제부터 1997년의 역사 재판이 가장 중요한 핵심 사실에 대해 사실 오인을 한 것이라는 기막힌 사실을 널리 널리 전파해야 할 것이다. 

▲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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