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적으로는 경제적 난국 극복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 세웠지만, 내면적으로는 1997년 2월 12일 중국주재 대한민국 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한 북괴 '조선노동당국제담당비서' 황장엽 씨가 국내에서 암약해 온 간첩 리스트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황장엽 리스트' 설로 인해 정가 분위기가 어수선하던 때에 김대중이 김영삼 대통령과 단독면담요구를 한데 따른 대안으로 1997년 4월 1일 사상초유의 '경제영수회담'이 열린 것이다.
김영삼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된 '칼국수 오찬회동' 말미에 김영삼과 김대중이 YS 집무실에서 30분간 단독면담을 통해서 YS와 DJ사이에 무언가 빅딜이 이루어진 것이다. 당시 단독면담의 당사자 중 하나인 김대중이 죽고 김영삼이 와병 중에 있어 김영삼이 끝내 입을 열지 않는다면, 1997년 만우절에 있었던 밀담 내용은 영원히 묻히고 말 것이다.
역사에 가정이란 의미가 없다지만 만약 그날 '황장엽 리스트 관련 빅딜'이 아니라 김대중이 표면상 요구 했던 '경제영수회담'이 밀도 있게 진행되어 필요한 예방조치가 실행됐더라면, 그해 11월 21일 IMF 구제금융 신청과 김대중의 금(金) 모으기 쇼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김영삼과 김대중 청와대 밀담이 있은 지 19일 후인 1997년 4월 20일 황장엽 씨가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 (귀순이 아니라) 망명에 성공했다. 그러나 황장엽 씨가 대한민국 정부에 제공한 '황장엽 리스트'의 실재여부는 물론 여타정보의 내용은 아직까지도 비밀에 싸여 있다.
1997년 만우절 영수회담 개최 계기(?)가 됐던 황장엽씨 망명을 전후하여 '황장엽 리스트' 관련여부는 알 수 없으나 1996년 말 간첩 깐수(정수일)사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고영복(암호명 : 공수산), 지하철공사 심정웅(암호명 : 철마산) 등 40년 가까이 암약한 고정간첩이 검거 된 게 고작이었다.
레바논 출신 아랍학과 교수 무하마드 깐수가 중국적 조선족출신 정수일 이었 줄을, 지하철에 수십 년 종사한 평범한 월급쟁이 심정웅이 40여 년간 암약한 가족지하당간첩이었을 줄을, 저명한 보수계 원로 사회학자로 알려 진 서울대 사회학과 고영복 교수가 36년간 잠복 암약한 고첩일 줄 누가 알았으랴?
만약 '황장엽 리스트'가 실재(實在) 했고 거기에 깐수, 고영복, 심정웅 이상의 거물급 인물이 포함 됐었다면, 그 자는 과연 누구였을까?
1997년 경제영수회담(?)으로부터 만 17년이 지난 2014년 4월 1일 오늘이 마침 만우절이다. 누군가 거짓말 삼아서라도, 우스개처럼이라도 황장엽 리스트(?)에 등장하는 간첩 1.2.3 중 한 '놈'의 이름이라도 흘려줬으면 좋겠다.
여담 같지만 깐수 사건을 해결한 당시 대공수사관 K모 씨는 화교출신 위장탈북 간첩 유가강의 '북한 밀출입' 증거조작 관련 혐의로 수사를 받던 도중 자살시도로 중태에 빠지는 등 세태무상을 절감케 한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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